[한경에세이] 손흥민과 디지털 혁신
“단순히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아닌, 프리미어리그를 이끄는 선수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손흥민 선수를 두고 한 말이다. 선수와 감독으로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프란츠 베켄바워도 “빠르고 역동적이며 아름다운 골을 넣는 슈퍼 플레이어”라고 손흥민을 칭송한 바 있다.

손흥민이 한국을 넘어 월드클래스 스타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이 쓴 자전적 에세이에 따르면 손흥민은 축구의 기본인 볼 리프팅에 숙달하기 위해 운동장 첫 바퀴는 오른발로, 두 번째 바퀴는 왼발로, 세 번째 바퀴는 양발을 교차해 볼 리프팅을 하며 돌았다고 한다. 한 번이라도 볼을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운동장을 돌았다. 이렇게 기본기를 닦는 데 7년을 투자한 뒤 18세가 돼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슈팅 훈련에 들어갔다. 손흥민의 아버지는 아들을 가르치면서 골을 결정짓는 찰나의 슈팅 감각은 수년간 축적한 탄탄한 기본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철저하게 숙지시켰다.

현란한 디지털 기술이 만연한 시대에 기업 경영에서도 기본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터넷이 도입된 뒤 지난 30년간 디지털화(being digital)는 기업의 생존을 위한 바이블로 여겨졌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이 디지털 혁신을 통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단순히 솔루션 도입, 시스템 구축을 넘어서는 새로운 디지털 혁신 전략(beyond digital)이 필요한 이유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인 PwC는 최근 발행한 연구 보고서에서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하고 더욱 차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핵심 전략을 제시했다. 화려한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고 적용하느라 헉헉댈 것이 아니라 디지털 혁신의 기초가 되는 시장 포지셔닝 전략, 상호 협력적 생태계 구축, 조직 문화와 리더십 등 전통적으로 기업 경영의 기본요소로 알려진 것들을 어떻게 디지털 혁신과 잘 연계할 것인지가 핵심 내용이다. 이런 기본적인 경영 요소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투자를 통해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고 오랜 시간 정성을 쏟아야 가능한 것이다.

디지털 혁신을 바탕으로 가전 기업에서 헬스케어 기업으로 위치 변화에 성공한 필립스, 디지털 혁신의 극대화를 위해 조직의 경계를 허물고 내부 역량을 결집해 꾸준한 주가 상승과 시장 지배력 강화라는 큰 성과를 이룬 하니웰의 사례는 디지털 혁신에서 정성과 시간을 들여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경쟁사가 하니까 덩달아 도입하는 디지털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 생태계, 조직, 리더십 등의 기본기가 충실히 갖춰져 있는지 점검하는 것으로 디지털 혁신의 첫 단추를 끼우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