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조선·자동차·타이어 등의 업종에서 1년 이상 근무하다 목·어깨 등 6개 신체부위 상병을 입었을 때 산재로 추정한다는 내용의 고용노동부 산재 고시 개정안 행정예고 기한이 그제로 만료됐다. 개정 고시대로 산재로 추정되면 작업현장 조사를 생략하고 곧바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에 부쳐져 산재 판정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는 효과가 있다.

근로자 불편을 줄인다는 점에선 바람직하지만, 고용부의 ‘추정의 원칙’ 기준을 보면 따져볼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산재 판정의 핵심이 되는 역학적 기준이 매우 자의적이고 편의적이란 지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부품 및 의장조립공, 조리사 등으로 1년 이상 일하다 드퀘르벵병(손목건초염)이 생기면 바로 산재로 추정된다.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에 대해 합리성을 찾기가 어렵다. 고용부는 과거 산재 승인율을 감안해 기준을 마련했다고 하나, 해당 통계는 2020년 한 해치에 불과하다. 덴마크,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근골격계 산재인정기준을 중량물 취급 횟수와 취급량, 신체부위별 작업시간 및 횟수 등으로 세분화해 규정하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사업장별로 작업환경이 천차만별인데 이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작업환경 개선으로 근무강도를 완화하거나 공장자동화로 작업량을 줄인 곳을, 그렇지 않은 곳과 동일하게 적용해 형평성 시비를 낳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질병판정위 판정위원 10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근골격계 산재판정 시 주된 역할을 하는 정형외과·인간공학 전문가 68%가 고용부 기준이 ‘부적절하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산재보험은 사업주인 기업이 전액 부담한다. 현 정부 들어 산재인정률이 크게 올라가 2017년 4조원이던 산재보험금 지급액이 2020년 약 6조원으로 늘었다. 이번 고시 개정은 단순히 금전적 문제가 아니다. 산재 판정이 쉬워지면 현장에선 산재신청 급증, 부정 수급, 근로의욕 저하 등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위험이 크다. 이번 개정 고시 대상 사업장들은 근로자의 70~80%가 잠재적 산재 승인자가 될 정도라고 한다. 기업들로선 중대재해법, 건설안전법 강화, 인권법 도입에 이어 산재 리스크까지 더해져 삼중 사중의 경영부담을 안게 됐다. 현장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기업 부담만 가중시킬 산재 개편안은 재고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