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 고려사이버대 총장 president5@cuk.edu >
[한경에세이] 감나무에서 배우다

작년 겨울 마당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주인과 중개인은 연신 맛있는 감이 많이 열린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남의 집 담장 위에 열린 감을 부러워만 하지 않고 따먹을 수 있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내 머리를 스쳐간 것도 사실이다. 봄기운이 꿈틀대기 무섭게 해동도 잘 안 된 땅을 파고 음식물 쓰레기와 깻묵으로 만든 퇴비를 듬뿍 넣어줬다. 농사 경험이 없으니 집주인이 알려준 방법과 책에 쓰여 있는 것들을 따라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전부였다.

계절의 변화를 일깨워주기라도 하려는 듯 감나무 가지들이 앞다퉈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맑은 연두색 잎이 솟아오르니 자연의 섭리에 대한 감사함도 함께 따라왔다. 온 나무를 뒤덮을 기세로 잎이 무성해지자 감사함의 자리는 금세 당연한 즐거움의 차지가 됐다. 잎이 나온 나뭇가지의 잎겨드랑이를 간질이며 작은 싹들이 돋아나더니 이내 노란 꽃들이 수줍은 얼굴을 내밀었다.

감꽃이 셀 수 없을 만큼 피는 것을 보며 내가 거름을 잘 줬기 때문일 것이라는 못된 우쭐함도 고개를 들었다. 이제 감나무를 괴롭힌다는 나쁜 해충들 물리치고, 웃거름 듬뿍 주면 크고 맛있는 감을 거둘 수 있겠다는 철없는 자신감까지 들었다. 그러나 큰 노력 없이 찾아온 행복감과 섣부른 희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후 마당에 나가 보니 시든 꽃잎과 함께 갓 나온 아기 감을 품은 감꼭지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내 눈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잘 자라던 감나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찬찬히 둘러봐도 딱히 마땅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에 ‘밤사이 불어온 못된 바람 때문이겠지’ 하며 위안하기로 했다.

나뭇가지로부터의 감꼭지 분리는 제 몫을 다하고 시들어간 감꽃들이 모두 떨어진 뒤에도 계속됐다. 그 많던 감이 몽땅 없어질 것 같다는 조바심을 무시하려는 듯 가지를 떠난 감꼭지는 날마다 더 많이 쌓여갔다. 야속했다. 다행히 ‘다른 데서 원인을 찾지 말고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먼저 돌아보라’는 착한 생각이 찾아왔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감나무를 키우며 겪게 되는 문제들은 주로 시비와 병충해 발생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겨우내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퇴비를 너무 많이 준 것은 아닐까 우려하며 살충제도 뿌려봤지만 소용없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다다르고 나서야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데 원인이 있음을 발견했다. 감나무는 자기가 지탱할 수 있는 분량 이상의 감은 모두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무엇인가에 머리를 한 방 크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감나무도 분수를 알고 내려놓을 줄 아는데 별 노력도 하지 않은 나는 한 개라도 더 달려 있기를 바라는 욕심만 가득 담고 있었구나. 품었던 예쁜 감들이 힘에 부쳐 견디다 못해 떨어뜨렸을 것을 생각하니 많이 부끄러웠다. 감나무만도 못한 놈.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