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입국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나라가 100개국을 넘어설 정도로 대한민국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과도한 ‘코리아 포비아(공포증)’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지만,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당하는 기습적 입국 차단이 잇달아 황당하고 안타깝다. 베트남에 이어진 일본과 호주의 일방적 ‘한국인 입국 제한·금지’를 보면 어쩌다 한국이 이렇게 됐나 하는 자괴감이 앞선다.

일본의 조치를 우리 정부는 언론보도로 알았다니 외교부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총포를 쏘아대는 전쟁 중에도 대화채널은 열어두는 게 외교라는데, 지금 정부에 외교가 있는 건가. 아무리 ‘강제징용 판결’로 갈등을 했다지만 서로 오가는 방문객이 연간 1000만 명을 오르내리는 이웃국가끼리 이럴 수는 없다. 주일 대사관과 9개 영사관은 뭐하고 있나.

대한민국의 국제고립이 한·일 간 ‘특수한 관계’ 때문만도 아니다. ‘한국인 입국금지’를 발표 직전에야 통보해 온 호주, 비행 중인 한국 국적기까지 돌려보낸 베트남, 초기부터 냉랭했던 이스라엘의 조치를 외교부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물론 더 큰 문제는 중국에서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수모다. 중국발 입국자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은 17개 성(省)과 시(市)에서 한국발 입국자를 격리하고 있다.

일본의 조치는 분명 섭섭함과 야속함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신중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청와대는 즉각 “상호주의에 입각해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상호주의라면 중국에 먼저 그렇게 했어야 했다. 국제사회가 지켜보기도 하거니와 ‘개방형 교역국’ 처지에서 자승자박 같은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 상투적 ‘반일(反日)감정’이나 자극하다가는 외교적으로 더한 궁지로 몰릴 수 있다. 대일(對日)·대중(對中) 외교뿐 아니라 ‘신남방정책’도 미덥지가 못하다. 끝이 안 보이는 국내 확산에 국제고립까지, 적기에 중국 입국자를 막지 않은 후유증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