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숨표와 쉼표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들이 항상 접해야 하는 것이 악보다. 악보엔 정말 많은 정보와 지시문이 오선지 위로 빼곡하게 기보돼 있다. 음의 높낮이와 길이를 표시하는 각각의 음표가 다양한 모양으로 배열돼 있는가 하면, 음의 리듬과 템포를 지시하는 여러 숫자가 표시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음악은 이런 표시 그대로 연주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가령 악보의 ‘솔’이라는 음정을 소리 낸다고 해보자. 그 음정을 듣기에 정확하고 이상적으로 연주하는지는 연주자의 기량과 훈련 차이에서 다른 결과를 낳는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음정을 낸다는 것은 음감과 호흡 조절이 수반돼야 함은 물론이고, 멜로디 라인이 올라가는 과정의 ‘솔’ 음정과 내려가는 과정의 ‘솔’ 음정의 기능과 색깔을 달리할 필요도 있다. 속도감을 지시하는 말 중 ‘안단테’는 해석하면 ‘걷는 정도로’라는 의미다. 느린 정도를 걷는 속도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사는 템포가 달라 매우 느리게 걸을 수도, 빨리 걸을 수도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연주하란 말인가?

심지어 우리가 ‘애드리브’라고 알고 있는 ‘Ad libitum’은 ‘마음대로 연주하세요’란 뜻으로 연주자의 자유에 일정 부분을 맡기는 지시문이다. 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이렇듯 작곡가가 표현하려는 다양한 의지를 담은 음악 부호와 기호, 지시문을 이해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연주를 하다 보면 악보에서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콤마 모양으로 된 숨표와 반 박자를 쉬는 8분 쉼표, 한 박자를 쉬는 4분 쉼표, 네 박자를 쉬는 온쉼표 등 소리를 내 연주하는 부분이 아닌 부호들이다. 음악은 소리가 나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소리를 내지 않는 많은 쉬는 부분이 있다. 숨표는 말 그대로 숨을 쉬는 부분을 표시한 것이고, 쉼표는 소리로 연주하지 않는 부분을 말한다.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을 보면 음정과 박자를 대체로 잘 표현하지만 노래가 여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소리 나는 부분에 신경쓰다 보니 숨표에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높은음 전에, 길게 내는 음 전에, 짧은 음 전에 쉬는 숨은 각각 다르게 준비해야 한다. 쉼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리를 내지 않는 부분이므로 소리 내며 연주할 때보다 긴장을 늦추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쉬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긴장감을 끌어내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 중 타악기 주자의 악보를 보면 멜로디를 연주하는 바이올린이나 그 외 다른 악기와 다르게 악보 대부분이 쉼표로 돼 있다. 한참을 쉬다가 심벌즈나 팀파니 같은 타악기가 음악에 백미를 더한다. 이 잠깐의 음악을 위해서 타악기 주자는 긴 연주 시간 내내 긴장을 놓지 않는다.

오페라 가수들의 악보를 보면 자신이 노래하는 부분과 노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노래하지 않을 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장면은 긴장감이 떨어지는 장면이 되고 만다. 그래서 오페라 가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한다.

약속 시간에 겨우 당도했을 때 헐떡거리는 숨과 좋아하는 자연 속에서 깊이 쉬는 숨은 한 곡의 삶을 사는 우리 인생 속에 완전히 다른 호흡이다. 나는 일하고, 만나고, 사는 쳇바퀴 같은 삶 속에 어떤 숨을 쉬고 있는가? 같은 날이 또 올지라도 숨 그리고 쉬는 일에 좀 더 신중을 기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