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율규제 통해 벤처캐피털 투자 활성화해야
“과도한 규제에서 경제를 해방시키는 중대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난 5월 폴 라이언 미국 하원 의장이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 수정안을 통과시킨 후 한 말이다. 도드-프랭크법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형 금융회사들에 대한 각종 감독과 규제책 신설을 골자로 한 법안이다.

국내 금융산업은 정부 주도로 발전하다 보니 선진국보다 공적 규제 수위가 높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금융테스트베드 운영, 인터넷전문은행 허용, 은산분리 완화 논의 등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혁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적 규제의 경직성이 4차 산업혁명으로 빠르게 진화하는 융·복합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저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부 금융규제 완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해외에서는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자율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자율규제는 관련 산업계가 조직을 결성한 후 자체적으로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이 업무를 적정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자율적으로 감독하고 제재하는 것이다.

자율규제는 ‘선진화된 규제’로 꼽힌다. 금융시장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과잉규제의 소지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율규제를 통해 규제공백을 해소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 국내 금융업계에서는 금융투자협회 등이 자율규제 역할을 하고 있다.

2년 전 “핀테크(금융+기술) 산업이 금융업인가, 정보통신기술(ICT)인가”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금융업으로 분류될 경우 법률상 벤처투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핀테크산업은 2016년 5월에야 법 개정을 통해 정식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 2014년 말부터 핀테크라는 단어가 신문지면을 뒤덮은 것을 감안하면 시장 참여자들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가 된다.

핀테크,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인공지능(AI) 등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 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은 여전히 정부 주도의 공적 규제만 존재한다. 공적 규제만으로는 융·복합 시대의 산업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벤처캐피털은 기술 경쟁력을 갖춘 창업기업에 투자금을 지원하고 멘토링을 통해 육성시킨 뒤 투자금을 회수해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자본이다. 혁신적인 안목으로 유망한 기업을 발굴해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벤처투자를 받은 550개 사에서 2118명의 고용이 창출됐다. 짧은 기간에 기업당 3.8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한 것은 어려운 고용 여건 상황에서 벤처투자가 일자리 창출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벤처캐피털은 ‘혁신 성장’과 ‘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핵심 산업이다. 그럼에도 정부 중심의 벤처투자 생태계는 시장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해 전문가들이 투자에만 집중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월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발표하며 민간 중심의 투자생태계 조성과 벤처펀드의 자율성 확대를 강조했다. 금융 선진국일수록 자율규제 기관의 역할과 금융회사 스스로의 내부 통제가 금융규제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자율규제는 시장친화성, 규제 유연성, 비용 효율성 등의 장점을 갖고 있다. 물론 자율규제는 자율규제 기관과 규제 대상의 이해상충 문제 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자율규제 기관의 인적·재정적 독립성 확보가 필요하다.

자율규제와 공적 규제는 상충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서로의 역할분담을 통한 효율적인 규제시스템 확립이 중요하다. 이제 정부는 골격을 관리하고 살을 붙이는 일은 시장의 전문가에게 맡겨 시장의 속도와 동행하는 합리적 규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 발표처럼 ‘민간 중심’의 투자생태계가 갖춰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