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적폐청산 도덕 정치서 포용 정치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지난 5월 첫째 주 83%에서 넉 달 만에 49%를 기록하며 연속 하락하고 있다.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대북정책에 대한 호감으로 높게 유지되던 지지도가 조만간 대선 득표율 41% 정도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 지지도가 반등하지 못하고 50% 이하로 고착되는 ‘집권 2년차 신드롬’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지지도 하락은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이 주된 이유이지만 조사에서 빠진 ‘뺄셈정치’에 대한 피로감도 상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1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당·정·청 전원회의를 주재하며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을 문재인 정부 2기의 ‘소명’으로 제시했다.

기본적으로 적폐청산은 지지자들을 결속시킬 수는 있지만 반대를 포용하는 정책은 아니다. 더구나 적폐, 구악(舊惡), 청산 등은 ‘민주주의’의 언어라고 할 수 없다. 적폐청산은 집권 세력이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잘못을 저지른 과거 세력을 구악으로 규정하고 청산해야 한다는 도덕적 사고를 근거로 한다. 이는 다양한 관점과 이해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고로, 민주주의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관점과 세력의 공존을 전제로 하고 경쟁을 통한 의견 수렴과 집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민주적 태도라는 것은 한마디로 ‘동의하지 않음에 동의’하는 것인데, 상대를 적폐로 규정하는 것은 자신들만 옳다는 도덕적 독선을 전제한다.

근대 정치학의 시조로 불리는 마키아벨리는 종교와 도덕으로부터 분리된 정치의 독자적 영역이 있음을 강조한다. 정치와 도덕은 분리되기 때문에 도덕을 통해서 정치를 이해하면 정치의 본질인 권력의 획득, 유지, 확장이라는 권력정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또 권력 유지를 위해 종교·도덕의 선악 원칙과 정치의 법칙을 혼동하지 말 것을 군주에게 주문했다.

적폐청산은 선악 논리에 기초해 도덕적으로 좋은 세력과 나쁜 세력으로 나눠 나쁜 세력을 처단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구악의 일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거 5·16 군사정변 공약의 세 번째 항목으로 ‘부패와 구악의 일소’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구악으로 지목된 대상은 정치깡패, 용공분자, 부정축재자, 거리의 부랑아들이었다.

그러나 적폐청산과 민주주의 협치는 함께 갈 수 없다. 또 청산의 정치와 관점이 다른 세력이 공존하며 경쟁하는 민주주의 정치는 동시에 이룰 수 없다. 상대에게 ‘악’이라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협치는 이룩할 수 없고, 선과 악의 이분법은 민주주의의 다양성 원칙과는 멀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an axis of evil)’ 개념은 정치 영역에 선과 악이라는 종교 언어가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지목하고 군사력 행사를 포함해 정권 교체까지 추진했다. 하지만 상대 국가를 종교적 판단에 의해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악’을 처단하는 목표를 가진 미국의 외교정책은 국제사회의 커다란 비난과 반발을 초래했다. 결국 군사작전을 수행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가져오려 했던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다.

상대를 도덕적으로 ‘옳다’ ‘그르다’로 구분하는 것은 오만의 가능성이 있다. 정치가 오만해지면 국민은 돌아선다.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경제정책 실패뿐만 아니라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 ‘내로남불’ 인사, 그리고 적폐청산의 피로감이 복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폐청산은 이미 충분히 했다. 국민은 일상에 피곤해하고 있다. 포용적이지도 않다. 남북한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라면 핵무기로 위협했던 김정은과도 악수하고 포옹할 수 있다면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과거의 구악 세력은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고 하면 국민은 그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쿠데타 이후 박정희는 도덕정치에서 실용정치로 바꿔 구악으로 지목한 ‘부정축재자’와의 협력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대한민국과 경쟁하는 국가와 기업이 국경 너머에 가득한 글로벌 경쟁시대다. 국제 경쟁에서 이기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구시대 세력도 포용하는 대통령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