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네안데르탈인의 몰락
요즘 상영되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은 2027년에 모든 여성이 임신 능력을 상실해 인류가 종말 위기에 직면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공상과학영화라서 실감이 나진 않지만, 네안데르탈인 멸종이 돌연변이로 인한 Y염색체의 결함으로 생식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가설을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인류도 환경오염과 합성 생물학 등의 부작용으로 이런 위기에 직면하는 것은 아닐까.

인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체격이 좋고, 뇌 용적량도 컸다는 네안데르탈인이 왜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졌을까. 네안데르탈인은 20만년 동안 유라시아의 넓은 지역에서 생존했는데, 3만~4만년 전부터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멸종 원인을 놓고 여러 분야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 밀려 도태됐다는 가설이 지배적이지만, 무력 충돌부터 언어 능력 부족 등 다양한 원인이 제기됐다.

경제학도 이런 논쟁에서 열외일 수 없다. 리처드 호란 미시간주립대 교수와 제이슨 쇼그렌 와이오밍대 교수 등은 자유로운 교역(trade)의 도입 여부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운명을 갈라놓은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네안데르탈인은 신체조건이 호모 사피엔스보다 뛰어나고 지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협력과 분업, 나아가 다른 지역과 교역을 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는 활동 반경이 매우 넓어 여러 지역 종족과 의견을 나누고 무역을 통해 원재료와 앞선 기술 등을 교환하는 등 종족 내부의 폐쇄적 그룹을 뛰어넘는 사회적 기재(supergroup social mechanisms)를 갖고 있었다. 사냥이나 무기 제조, 이동 등에서도 각자의 역할과 기능, 임무 등을 전문화하고, 다른 그룹과 새로운 지식을 교환하면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그 결과 유능한 사냥꾼과 도구로 더 많은 식량과 포획물을 확보했고, 생존 능력과 종족 번식 가능성도 크게 높아졌다. 호모 사피엔스야말로 교역과 전문화를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킨 최초의 종(種)이었던 셈이다.

수만년 전 선사시대 때부터 분업과 개방, 교역, 전문화가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같은 대역사의 갈림길을 만들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차이를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고, 외부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폐쇄적인 행태를 보일 때마다 한 번쯤 되새겨 봐야 할 교훈이다.

정갑영 < 전 연세대 총장 jeongky@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