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 진 자리에 앉아 산그늘로 뜨거운 내 젊음을 덮어 식히곤 했다. 참으로 인생은 바람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강을 건너다 뒤돌아 보았더니 내 나이 서른이었고,앉았다 일어나 산 보니 마흔이었고,감았던 눈을 떴더니 쉰 고개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김용택'인생'>

세월엔 차별이 없다던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환갑상을 받았다고 한다.

빌 클린턴,스티븐 스필버그,도널드 트럼프,실베스터 스탤론 등도 1946년 병술년 개띠 동갑이다.

2차 대전 직후 태어나 60년대 후반∼70년대 초 그러니까 20대 때 히피문화 등으로 기성세대 가치관에 거세게 도전했던 세대다.

어쩌면 자신들은 늘 그대로일 줄 믿었던 세대가 어느 새 60줄에 들어선 셈.부시 대통령이 "어릴 때 60세인 사람을 보면 '노인이 간다'고 했는데 지금 나는 상당히 젊다고 느낀다"고 털어놓은 모양이다.

부시만 그러랴.9월에 회갑을 맞는 노무현 대통령 역시 매일 팔굽혀펴기 50번을 한다고 할 만큼 젊다.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평균수명이 80세 가까이로 늘어나면서 60대에도 청바지를 입고 회갑 진갑(회갑 다음해)은 물론 칠순 잔치마저 쑥스럽다며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졌다.

잔치 대신 여행을 떠나는 가족을 위해 축하공연과 폭죽놀이를 포함한 '칠순(팔순) 이벤트'를 마련하는 펜션도 생겨났다.

그래도 막상 회갑을 맞는 이들의 마음은 착잡한 듯하다.

모든 걸 순리대로 이해하게 되는 이순(耳順)의 나이라지만 그러기엔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수도 많다.

몸은 젊고 마음은 더 젊고 이제사 뭔가 제대로 해볼 것 같은데 퇴직을 강요받은 이들의 경우 자축은커녕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과 자괴감만 가득할지 모른다.

하지만 후회는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나이의 무게에 짓눌리면 남은 생애의 활력을 찾기 힘들다.

모름지기 프로란 승리의 의미는 축소하고 패배 뒤에도 '한 수 잘 배웠다'고 미소지을 줄 알아야 한다지 않는가. '인생 60부터'가 현실이 된 지금,회갑은 인생의 새 포물선을 시작하는 기점이다. 포물선의 모양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