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에 최대 호황"

요우커 특수에 아모레·LG 등 주문 쏟아내
"100억원 지원할테니 증설해달라" 제안도
"한국 화장품 글로벌 약진…중기에 단비"
< “휴일도 없어요” > 영일유리공업 직원들이 어린이날인 지난 5일에도 출근해 화장품용 유리병 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달부터 연중무휴로 24시간 근무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화성=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 “휴일도 없어요” > 영일유리공업 직원들이 어린이날인 지난 5일에도 출근해 화장품용 유리병 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달부터 연중무휴로 24시간 근무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화성=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어린이날인 지난 5일. 경기 화성시 정남면의 유리병 제조업체 영일유리공업은 평일처럼 분주한 모습이었다. 공장 내부는 뜨거운 입김을 내뿜는 유리물로 한여름처럼 무더웠다. 휴일 없이 주야간 3교대로 쌩쌩 돌아가는 현장이었다. 고영일 사장은 “사업 45년 만에 이런 호황은 처음”이라며 연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밀려드는 주문

[K뷰티 낙수효과] 화장품 유리병·원재료 중기 "주문량 10배 늘어 24시간 풀가동"

1971년 서울 오류동에 공장을 차린 고 사장은 ‘유리병업계의 1세대 기업인’으로 꼽힌다. 100여개 화장품 회사에 1만여개 제품을 공급해왔다. 공장을 화성으로 확장 이전한 것은 1989년. 가을에서 봄까지는 화장품병을, 비수기인 여름철에는 매니큐어병이나 약병, 음료수병 등을 만들며 연간 100억원대 매출을 일궈왔다.

하지만 최근 화장품병 주문이 쏟아지면서 다른 병은 도저히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대 거래처인 LG생활건강이 갑자기 병 주문량을 10배로 늘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부인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한국 면세점에서 ‘후’를 구입한 게 알려지면서다. 공장 2개를 모두 ‘풀가동’한 것은 지난달부터.

고광배 상무는 “현재 밀려있는 주문만 600만명이 넘는 데다 이달부터는 월 1000만개 이상을 만들어야 해 제2공장 용해로에 불을 붙였다”며 “얼마 전 100명이었던 직원도 120명으로 늘려 24시간 3교대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은 사상 첫 200억원대에 진입할 전망이다.

○넘쳐나는 일감

재료·인쇄·포장재업체들도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25년째 유리병 인쇄업을 하고 있는 삼안산업의 성낙준 부장은 “작년 10월 이전엔 월 170만개의 제품을 생산했지만 지금은 240만개를 만들고 있다”며 “야근에 주말 특근까지 해가며 주문을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에 있는 덕수산업의 신성식 부장은 “우리가 만드는 포장재는 특수지를 쓰는 데다 표면처리, 금박 은박 등 스탬핑 작업 등 총 7~8개 공정을 거치는 만큼 일반 포장재보다 30~40% 이상 비싼 편”이라며 “그래도 주문이 끊임없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중소기업들이 줄잡아 수백개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낙수효과’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항노화·미백성분 등 천연추출물을 만드는 코스닥 상장사인 바이오랜드(19,800 +0.25%)도 올해 큰 폭의 실적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김석종 영업부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원재료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해 공장을 100% 가동하고 있다”며 “화장품 부문의 호황이 회사의 다른 사업인 식품 제약 부진을 메우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증설 열기도 뜨거워

영일유리공업만 호황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미스트, 선스프레이 등 뿌리는 화장품용 캔(에어로졸)을 만드는 승일(15,450 +4.75%)도 넘쳐나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생산시설을 늘리기로 했다. 이 회사는 아모레퍼시픽의 ‘미장센’ ‘라네즈’ ‘해피바스’와 LG생활건강의 ‘엘라스틴’, 한국콜마, 코스메카 등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용 에어로졸시장의 약 66%를 차지하고 있다. 승일 관계자는 “연간 생산량 6000만병 가운데 절반 이상이 화장품용으로 나가고 있다”며 “올해 10월 완공되는 충북 음성 공장은 화장품 용기를 주력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병에 대한 수요가 공급능력을 훨씬 앞지르면서 미리 ‘사재기’하려는 대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한 대기업은 작년 말부터 주요 품목별로 30만병씩 상시 비축한다는 방침 아래 중소 제조현장을 샅샅이 훑고 있다. 또 한 중소기업 사장은 “100억원을 투자할 테니 공장을 증설해 우리 회사 제품만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노동절 특수 70%↑

화장품 업계의 이 같은 ‘낙수효과’는 이제 더 이상 성수기, 비수기를 가리지 않는다.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를 비롯한 아시아 관광객들이 한국 화장품을 ‘싹쓸이’하고 해외 현지 수출도 큰 폭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중국 국경절 이후 급증한 국산 화장품의 인기는 올해 설 연휴, 노동절(5월1~3일) 연휴에도 이어졌다. 노동절 연휴 기간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주요 백화점의 화장품 판매는 1년 전보다 70%가량 폭증했다. LG생활건강 ‘후’의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1분기 2591만달러에서 올 1분기에 1억1770만달러로 4.5배 이상 뛰었다.

■ 낙수효과

trickle down effect. ‘물이 넘쳐 아래로 떨어진다’는 뜻. 산업계에서 대기업이 성장해 국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 중소 협력업체의 일감과 고용도 동시에 늘어나는 현상을 일컫는 의미로 쓰인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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