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긴 했지만 경기력에 대한 고민은 풀지 못한 브랜던 로저스 감독(사진 = 리버풀 FC)





리버풀이 블랙번을 꺾고 FA컵 준결승에 올랐다.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에 연달아 패하며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내용만 놓고 보면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경기였다. 사실상 프리미어리그 승격이 좌절된 챔피언십리그 10위 팀을 상대로 보여준 리버풀의 경기력은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경기에서 브랜던 로저스 감독은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마틴 스크르텔과 엠레 찬의 공백으로 인해 센터백 자원에 여유가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맨체스터유나이티드전과 아스날전에서 약점이 드러난 3-4-3 포메이션의 대안이 필요했던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로저스 감독의 4-3-3 카드는 철저한 실패로 돌아갔다.



4-3-3 포메이션은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배치해 중원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기본인 전술이다. 중원에서 볼을 간수하면서 풀백이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안정적으로 전진 패스를 연결할 수 있어야 공격력이 살아난다.



그런데 오늘 경기에서 조던 헨더슨, 조 앨런, 루카스 레이바는 이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대인 마크를 하듯 일대일로 리버풀 선수들을 따라다닌 블랙번 선수들의 압박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헨더슨과 앨런, 루카스의 위치 선정과 볼 소유 능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지난 세 경기에서와 달리 오늘 경기에서의 리버풀은 후방 공격 전개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포백 앞에 세 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함으로써 수비 라인에서 미드필드 라인으로 나가는 패스 코스를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원에서 전방으로 나가는 패스였다. 블랙번은 리버풀이 중원에서 공격을 전개할 때 볼을 가진 선수와 볼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선수를 모두 일대일로 대인 방어했다. 효과적인 전술이긴 하지만, 일대일 싸움에서 밀리거나 상대가 원활한 패스 앤 무브를 구사할 경우 공간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은 전술이기도 했다.



하지만 리버풀 선수들은 일대일 대결을 통해 블랙번 선수들을 제쳐내지도, 패스 앤 무브로 압박을 붕괴시키지도 못했다. 헨더슨과 앨런, 루카스가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아닌 데다, 움직임 자체도 후방으로 내려와서 함께 볼을 운반하기보다는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서 패스를 받으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풀백들이 공격에 가담할 시간을 벌지 못해 그라운드를 넓게 사용할 수 없었고, 라힘 스털링과 필리페 쿠티뉴도 상대의 집중 견제 속에 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 스터리지의 부진으로 공격 마무리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전에 상대 위험 지역으로 질 좋은 패스를 공급할 수 없었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



3-4-3 포메이션에서나 4-3-3 포메이션에서나, 리버풀이 겪는 어려움의 본질은 중앙 미드필더의 위치 선정 실수와 볼 소유 능력 부족이다. 3-4-3 포메이션에서는 상대가 센터백에게서 윙백에게로 나가는 패스 코스를 틀어막고 수비형 미드필더를 압박하면서, 4-3-3 포메이션에서는 상대가 중앙 미드필더를 일대일로 따라다니면서 기본적인 공격 전개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리버풀이 좀 더 경쟁력 있는 팀이 되기 위해서는 영리한 위치 선정 능력과 볼 소유 능력을 갖춘 수비형 미드필더 영입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진호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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