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경제 대도약- 5만달러 시대 열자] 은행 자동화기기 한 대당 166만원 손해
미국 은행들은 일반 예금계좌에 대부분 계좌 유지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대형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경우 한 달에 5달러를 받는다. 인출과 송금은 한 달에 세 건까지만 무료로 제공한다. 하루 잔액이 2500달러를 유지하지 못하면 기본 건수를 초과한 인출, 송금 거래시 건당 3달러의 수수료를 따로 부과한다.

국내 은행도 계좌 유지 수수료 부과를 시도한 적이 있다. 옛 제일은행은 2001년 국내 은행 최초로 계좌 유지 수수료를 도입했으나 소비자 반발에 따라 1년도 안돼 수수료 면제 항목을 대폭 늘려 사실상 수수료를 없앴다. 이후 계좌 유지 수수료는 국내 은행권에서 ‘금기어’가 됐다.

국내 은행들은 2011년 금융당국의 수수료 인하 압력에 따라 자동화기기(CD·ATM) 인출 또는 송금 수수료를 최대 50% 낮췄다. 은행들은 자동화기기를 운용하면서 손해를 입고 있다. 금융연구원 분석 결과 은행들은 2012년 자동화기기에서 3099억원의 수입을 올린 반면 3942억원의 비용을 지출했다. 총 손실액은 844억원에 달한다. 이를 자동화기기 수(연평균 5만851대)로 나누면 대당 약 166만원의 손해가 발생한 셈이다.

국내 은행들은 이자 이익에 쏠린 수익구조 탓에 수익성이 경기 변화에 취약하다는 분석이 많다. 이 때문에 수수료 수입 등 비이자 이익을 늘려 수익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수수료 감면 등에 따라 총이익에서 비이자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2013년 평균 13.4%로 금융위기 전인 2006~2008년 평균 14.1%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그럼에도 수수료 인상 얘기를 꺼내는 것은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진다. 이런 상황은 은행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다른 수익원 개발은 등한시한 채 수수료를 올려 손쉽게 이익을 내려는 안이한 자세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 수수료를 깎는 게 소비자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단선적인 주장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은행들은 자동화기기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자동화기기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은행권 자동화기기 수는 2012년 말 5만968대에서 지난 6월 말 4만9741대로 줄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금융 서비스는 공짜라는 시각이 많아 제대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소비자들이 불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감독당국과 은행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권우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업무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들이 부수·겸영 업무를 늘려 수수료 수익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