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위기의 실리콘밸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구글 애플 등 정보기술(IT) 업계 대표들을 만났다. 이번이 두 번째다. 2011년 첫 만남에서는 일자리가 주제였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잘나간다는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에 미국 내 일자리를 늘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때는 오바마 대통령이 다급했다. 이번에는 그 반대다. 미 IT 기업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국가안보국(NSA)의 감시 프로그램을 개혁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이후 미 IT 기업들에 대한 불신이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

미국 안에서는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이 NSA의 정보수집 활동에 대해 처음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불똥이 앞으로 어디로 튈지 모른다. 미국 밖의 상황은 더 심상치 않다. 당장 미 IT 기업들이 선도하던 클라우드 컴퓨팅이 된서리를 맞을 조짐이다. 미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급락하면서 클라우드산업이 입을 피해가 향후 3년간 215억~35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유럽은 아예 험악한 분위기다. 미국이 엿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럽의 데이터센터는 유럽 안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넘쳐난다. 유럽연합(EU)은 즉각 데이터 보호법 정비에 착수했다. 유럽만 그런 게 아니다. 브라질이 새로운 정보보호 조치를 내놓는 등 다른 국가들로도 확산될 기세다.

몇 년 전 중국이 구글과 갈등을 빚었을 때만 해도 비난의 대상은 중국 공산당이었다. 당시 중국이 구글 서버를 자국 내에 설치하고, 저장된 정보가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통제하겠다고 나오자 구글이 반발했던 것이다. 지금은 완전 딴판이다. 중국의 이런 조치가 이해 안될 것도 없다는 식이다. 정보보호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는 증거다.

급기야 미 IT 기업들은 ‘정부 감시활동 개혁 그룹’을 결성했다. 미 안팎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그만큼 따가워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태가 바로 진정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미 정부와 실리콘밸리 기업들 간 오랜 커넥션이 주목받으면서 불신감이 더 높아지고 있다.

한국 IT는 문제 없나

사실 실리콘밸리는 미 정부와의 관계를 빼놓고는 설명이 안된다. 미 국방예산의 전폭적 지원 없이 실리콘밸리가 가능했겠느냐는 얘기다. 지금도 CIA 등 미 정보당국은 벤처캐피털(In-Q-Tel)을 설립해 투자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배후가 누구냐는 의심은 그래서 꼬리를 문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The World in 2014’를 통해 섬뜩한 전망을 내놨다.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이 은행장, 석유재벌 등과 같은 부류의 악마로 등극할 것이라고.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는 소리가 터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NSA에 흔쾌히 정보를 넘긴(?) 미 IT기업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경고다.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을 외치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상하게도 국내는 밖에서와 달리 조용하다. 워낙 실리콘밸리를 동화 속 왕국처럼 떠받들기만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IT산업이 기술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뢰가 기술만큼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여기에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야 할 처지다. 만일 우리는 판만 깔아주고 미 IT기업들이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을 싹쓸이하면 그때 그 정보는 누구의 것이 되나.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