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파도 거세지만 석유제품운반선 수주는 '순항'…중형조선소 도크 채운 '미스터 PC'
‘미스터 PC를 잡아라.’

원유 대신 정제가 끝난 나프타와 휘발유 등에 대한 운반 수요가 늘면서 ‘MR PC’로 불리는 석유제품 운반선이 조선사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이 배는 나프타와 휘발유, 경유 등을 3만~5만t씩 운반하는 중형(medium range) 석유화학제품운반선(product carrier)으로 올 들어 국내 조선업체들이 사실상 싹쓸이 수주하고 있다.

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미포조선은 국내 선사인 동아탱커로부터 MR PC 2척을 수주하면서 올해 수주 목표 32억달러 중 17억달러를 달성했다. 조선 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수주 목표 달성률이 50%를 넘어섰다. 지난해 이 배를 모두 22척 수주한 현대미포조선은 올해에만 42척을 수주했다.

SPP조선도 올 들어 MR PC 15척을 총 5억1000만달러에 건조키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STX조선해양은 총 8척의 MR PC를 척당 평균 3300만달러에 건조하기로 했다. 올 들어 전 세계에서 발주된 70여척의 MR PC선 중 90%가 넘는 65척을 국내 조선사가 수주한 것이다.

올 들어 선주사들의 MR PC 발주량 자체가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96척이 발주됐지만 올해는 4월까지만 70척이 넘는 건조계약이 체결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이 자체 보유한 원유 정제 시설이 노후화되면서 중국과 중동 산유국에서 원유가 아닌 정제를 마친 제품을 직접 들여오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원유(crude oil)를 운반한 뒤 정제하던 기존 방식에서 정제 후 제품을 운반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중형 크기의 PC선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선박 생산자(조선사)와 운용사(해운사) 모두에 경제성이 높아서다. 현대미포조선과 SPP조선은 각각 40만t과 31만t의 중형급 선박건조용 도크를 갖고 있다. MR PC선은 길이 180m, 높이 30m, 너비 20m 전후로 하나의 중형 도크에서 3~4척의 배를 동시에 건조할 수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제품유를 옮기는 PC선은 최소 파나막스(약 7만의 기름을 싣고 파나마운하를 건널 수 있는 규모) 이상급인 원유 운반선처럼 사이즈가 클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국내 조선사들이 연비를 높인 선박을 앞다퉈 개발한 것도 선주사들의 교체 수요를 이끄는 요인이다. 현대미포조선 관계자는 “작년 7월 스콜피오스에 인도한 MR PC는 기존 선박보다 연료를 30% 이상 덜 소모한다고 알려지면서 선주사들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전자식 엔진을 장착하고 프로펠러 크기를 최적화해 연비를 대폭 높인 독자 선형을 개발, 작년 인도분부터 적용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항되는 MR PC선은 약 1000척 규모다. 연료저감형 선형을 적용하면 20년 운항 시 새 배 가격만큼의 연료값을 벌 수 있어 향후 선주사들의 선박 교체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조선업체들은 앞으로 MR PC의 계약 가격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덤핑경쟁을 자제해야 윈-윈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미포조선과 SPP에서 선가를 올려받기 위해 낮은 가격을 부르는 선주를 돌려보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현재 MR PC선의 가격은 5000만달러가 넘던 2008년에 비해 40%가량 떨어진 3300만달러 선이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