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부자는 지금] '빌딩 푸어' 시대…관리방식 바꾸니 임대수익 2배로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월 중순, 서울 청담동의 6층짜리 소형 빌딩에 과일바구니가 전달됐다. 건물주가 관리회사를 통해 임차인 13개사에 선물을 돌린 것. 올 들어 중소형 빌딩의 공실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꼬박꼬박 임대료를 내는 입주회사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빌딩 전문 관리회사인 글로벌PMC의 김용남 사장은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건물주라고 으스대는 시절은 지났다”며 “임차인들의 니즈(needs)에 맞는 서비스를 누가 얼마나 더 제공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매니지먼트’가 돈이 되는 시대

[강남부자는 지금] '빌딩 푸어' 시대…관리방식 바꾸니 임대수익 2배로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사고파는 과정을 통해 수익을 보는 시대는 확실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신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관리 기법이 급부상하고 있다. 매니지먼트(management)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부동산 비중이 높은 고액 자산가들이 특히 관리의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홍익대 후문 쪽 상수동의 7층짜리 고시텔도 체계적인 관리로 환골탈태한 경우다. 50실 규모의 이 건물은 여직원과 시설관리 인원까지 채용해 건물을 관리했지만 공실이 15%에 이를 정도로 수익률이 형편없었다. 고심 끝에 건물주가 전문 관리회사를 찾은 건 4년 전. 관리회사는 고시텔의 주 수요층이 대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해 건물 1층의 갈비집을 내보내고 커피숍과 휴대폰 매장을 들였다. 시큐리티 장치를 설치하고, 옥상에도 조경을 설치해 학생들의 휴게공간으로 활용토록 했다. 학생들에게 오는 우편물을 직접 전달하는 한편 모든 관리비와 운영비 내역을 일일이 공개해 임차인들의 신뢰를 샀다.

꼼꼼하게 관리한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공실은 사라지고 임대료도 꾸준히 올라갔다. 4년 전 월 1710만원 정도이던 임대료 수입은 313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A사 관계자는 “학부형이 둘러보고 바로 계약하는 사례가 많을 정도로 주변에서 선호하는 고시텔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빌딩 푸어’ 등장으로 더 주목

매니지먼트가 중요하다는 공감대는 중소형 빌딩 투자 붐이 몰아닥친 이래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월세형 부동산이 집중 조명받으면서 자산가들의 대표적인 투자 상품으로 떠올랐지만 기대했던 수익률을 올리는 사례가 많지 않아서다. 서울 도심권의 5~10층 정도의 중소형 빌딩들은 대부분 15~20%의 공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설상가상으로 경기침체를 견디지 못해 중소형 빌딩 임차인들이 외곽으로 빠지거나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건물주들 사이에 ‘빌딩 푸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김용남 사장은 “빌딩 가격의 40~50% 대출을 끼고 매입한 투자자들은 공실이 조금만 높아져도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공실을 줄이기 위해 관리회사를 찾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증권도 최근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중소형 빌딩 등 부동산 포트폴리오 운용 상태를 진단하고, 임대수익을 높일 수 있는 해법을 조언하는 고객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장현창 삼성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예전에는 각종 개발, 투자 정보를 주로 제공했지만 이제는 보유한 부동산을 어떻게 운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훨씬 중요한 시점”이라며 “일반인들이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듯, 고액 자산가들이 보유한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점검해 해법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실시했는데 호응도가 무척 높았다”고 말했다.

주택시장도 관리서비스가 늘어나는 추세다. 고급 빌라 전문 관리업체인 하우만은 아파트 관리회사처럼 청소용역, 시설관리, 보안 등의 서비스를 대행하는 한편 거주자들이 보유한 중소형 빌딩과 토지 등 부동산물건의 임대차 및 거래 등을 알선하고 있다.

○“때를 기다린다”…관망세도 많아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등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보유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도 잇따른다. 영등포의 3층짜리 건물을 상속받은 김모씨는 월 임대료가 1500만원에 불과해 시세차익을 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30억원의 양도세를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방법을 모색하다가 건물을 새로 짓기로 했다. 총 38억원을 들여 지상 14층으로 올리는 이 공사가 마무리되면 월 5000만원의 임대료는 거뜬할 것으로 건물주는 보고 있다.

시세 차익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자산가들은 저점 매수의 시기를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급매물과 경매물건이 주로 이들이 노리는 타깃이다. 다만 최대한 낮은 가격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요즘의 풍속도다. 압구정동에서 매물로 나온 6층짜리 한 건물도 당초 소유주가 65억원을 불렀으나 협상 끝에 53억원까지 떨어졌지만 망설이던 매수자는 끝내 계약을 포기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PB는 “대선도 있고 시장 방향이 어디로 흐를지 몰라 투자를 망설이는 자산가들이 많아 거래가 성사되는 일이 드문 것 같다”고 말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청담역지점장은 “압구정 대치동 쪽 고급 주택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도 제법 있지만 아직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경매기법 등을 공부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투자자들이 꽤 많다”고 말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