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시장 5조원시대] (2) 백화점 '名品 모시기'…샤넬ㆍ에르메스엔 입점 수수료 확 낮춰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는 가두점을 중심으로 명품을 판다. 중국 홍콩에서는 대형 쇼핑몰에 명품 매장이 몰려 있다. 하지만 국내 명품 시장의 유통 구조는 다르다. 면세점과 병행수입을 제외하면 백화점이 사실상 명품 판매를 독점하고 있다. 호텔 부티크 매장이나 청담동 가두점이 있긴 하지만 점유율은 5% 미만이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차별화 전략으로 고급화를 내세운 백화점과 국내 시장 진출에 따른 투자 리스크를 줄이려는 명품 브랜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백인수 롯데 유통전략연구소장은 "백화점과 비슷한 상품구색을 갖추고 저렴하게 파는 대형마트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도로 성장하자 백화점들은 고급화로 대응하면서 간판 상품으로 명품을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백화점 중심의 국내 명품 유통 구조

[명품시장 5조원시대] (2) 백화점 '名品 모시기'…샤넬ㆍ에르메스엔 입점 수수료 확 낮춰
'명품의 메카'를 자처하던 갤러리아나 현대뿐 아니라 '대중백화점'을 표방해온 롯데와 '생활 속의 백화점'을 내세우던 신세계도 고급화를 기치로 내걸고 명품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백화점 1,2층의 노른자위에 대규모 명품존을 조성하고 다양한 우대조건을 제시해 명품 브랜드를 끌어들였다. 서울 소공동 롯데 본점의 에비뉴엘이나 신세계 본점 명품관과 같은 대규모 명품 전용 점포를 새로 내기도 했다. 명품업체 관계자도 "전국 주요 상권의 요지를 점하고 있는 백화점을 통해 매장을 쉽게 낼 수 있는 데다 가두점에 비해 초기 투자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실패시 철수 부담도 적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에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이 2~3개층의 독립 매장으로 생겨났지만,국내 명품 쇼핑객들은 백화점을 더 선호하고 있다. 루이비통이나 구찌 등 인기 브랜드의 가두점에도 일본 도쿄의 플래그십 매장처럼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백화점의 이들 브랜드 매장에는 줄을 서서 입장할 정도다. 이원준 롯데백화점 상품본부장은 "백화점들이 쇼핑하기 편한 환경을 조성하고 매장을 대형화하면서 상품 구색에서 뒤지지 않는 데다 우량고객(VIP) 마케팅이나 백화점 카드 등을 통해 구매고객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백화점 명품매장 유치 경쟁 치열

그렇다고 백화점이 명품 브랜드에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신규점이나 리뉴얼을 계기로 백화점들이 치열한 명품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그룹 회장이 지난 4월 방한했을 때 이부진 신라호텔 전무는 인천공항까지 나가 함께 공항 내 면세점을 둘러보며 신라면세점의 현황 등을 설명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직접 영접했으며,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과 면세점에서도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매장을 안내하고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과도 1시간여 동안 환담했다. 때마침 롯데 · 신라면세점 간 인천공항 내 루이비통 유치 경쟁이 한창 진행 중이기도 했지만,그만큼 루이비통이 국내 유통업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졌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빅3'가 백화점에 내는 수수료는 매출 대비 10%대 초반이다. 루이비통의 경우 2007년 이후 신규 입점한 백화점에선 수수료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국내 패션브랜드의 입점 수수료율이 30~40%에 달하는 데 비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다. 보통 입점 브랜드가 부담하는 매장 인테리어 비용도 백화점에서 다 내준다. 이렇게 보면 명품 매출 비중이 높아질수록 백화점의 수익성은 나빠지는 구조다. 이에 대해 신동한 현대백화점 명품 바이어는 "명품의 매출 기여도보다는 VIP들의 식품,생활용품 등 연관 구매나 고급 백화점으로서 이미지 제고 효과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신생 브랜드 몸값도 천정부지

명품업계에서는 현재 국내 명품 매장수가 한계점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루이비통의 국내 매장수(면세점 제외)는 21개,구찌는 23개,프라다는 19개로 명품 브랜드들이 진출 대상으로 삼는 광역시에는 거의 들어온 상태다. 샤넬과 에르메스는 각각 9개이지만 '희소성'을 중시하는 브랜드 전략상 점포수를 더 늘리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백화점의 한 명품 바이어는 "앞으로 유치전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주요 브랜드들의 수수료율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며 "끌로에나 보테가베네타,발망 등 신생 브랜드가 뜬다 싶으면 백화점들이 달려들어 명품의 몸값을 올려놓는 현상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