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차 경쟁-환율 하락 위기속 반전 노려

공고한듯하던 전 세계 자동차업계 판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급변기가 한국 완성차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화두가 되고 있다.

급격한 판도 변화를 계기로 '위기냐 기회냐'는 물음이 쏟아지고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위기야말로 곧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국내 업체들이 강점을 보여온 소형차 시장의 경쟁이 최고조에 달하고 국내 업체들의 수출 증대를 뒷받침해주던 환율마저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위기' 국면을 강조하고 있다면, 북미 시장에서 크라이슬러와 GM의 공백, 고급 차 시장질서의 재편 가능성은 분명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점입가경' 소형차 시장경쟁 = 지난해 세계 4위였던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1분기 143만여대의 승용차를 판매, 일본의 도요타(145만대)에 바짝 접근하며 2위로 뛰어올랐다.

폴크스바겐이 미국의 GM과 르노-닛산을 제치고 도요타와 접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소형차 시장에서 선전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운 폴크스바겐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의 피아트도 크라이슬러 지분과 GM의 유럽 자회사인 오펠의 인수를 추진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피아트 역시 유럽 내에서 소형차에 강점을 가진 회사다.

북미 소형차 시장에서 성장해온 현대기아차 등 한국 업체들로선 폴크스바겐과 피아트의 '거대화'는 북미 시장을 잠식당할 '위협' 그 자체다.

여기에 미국 빅3 업체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포드가 최근 미시간 공장의 트럭 생산라인을 기존 소형차 브랜드인 '포커스'를 업그레이드한 '뉴 포커스' 라인으로 전면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중대형 차량에 집중해온 포드마저 소형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
현대기아차로선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경쟁업체 외에 유럽과 미국 업체들과도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자동차 시장은 수요가 줄어 공급과잉 상태가 됐지만, 소형차만은 상대적으로 판매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시장 판도가 뒤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1천200원대로 떨어진 것도 위기의식을 환기시키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3월 초 연중 최고치인 1천570원까지 치솟았던 환율 효과를 톡톡히 누렸지만, 이제는 더이상 환율에 따른 경쟁력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최근 환율상승에 따른 매출 증대 효과를 경계하고 판매 확대에 더욱 총력을 쏟으라고 경영진을 독려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현대차 정태환 재경본부장은 "수년 전부터 신차 설계단계부터 환율 900원 이하 상황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원가개선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고 낙관했지만, 환율 급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 '위기' 딛고 세계 5위 노린다 =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한 산업특성상 업계 순위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 자동차 시장이 들썩이면서 이때를 이용해 파이를 늘리려는 업체들 간 합종연횡과 시장 선점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한국 업체들로서도 지금은 위기인 동시에 시장을 확대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기회가 되고 있다.

일단 국내 업체들은 올해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데는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미국에서 1분기 한국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은 7.5%로 작년 같은 기간 4.6%보다 2.9%포인트 높아졌다.

서유럽 시장에서도 한국차는 작년 3.2%에서 올해는 3.7%로, 중국에서는 6.0%에서 7.2%로 각각 뛰어올랐다.

소형차 위주로 차 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소형차에 강세를 보인 한국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본 것이다.

1분기 세계 시장에서 90만대를 판매, 5위인 포드(97만대)에 이어 6위를 차지한 현대기아차는 '빅5' 진입을 노리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419만여대를 판매했는데 현재 해외 생산기지를 늘리고 있어 연말 600만 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소형차 경쟁력을 키운다면 5위권 진입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1분기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했지만, 소형차는 오히려 3% 늘어 가능성을 보여줬다.

더욱이 미국에서 GM이 파산할 경우 이는 현대기아차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데 일조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서성문 애널리스트는 "GM의 파산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으며, 이 경우 GM과 크라이슬러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조만간 20% 수준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회사가 가져올 공백을 현대기아차 등 나머지 업체들이 나눠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GM이 파산하더라도 GM대우의 경우 '굿 GM'으로 분류돼 생존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커 유동성 위기만 넘길 경우 GM대우 역시 인수합병 등을 통해 호기를 맞을 수 있다.

불황기와 현재와 같은 시장재편기는 고급차 시장의 경우 후발업체가 상위권에 진입하고 브랜드가치를 높일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일본 도요타 렉서스가 1980년 후반 불경기에 미국 시장에 정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차는 소형차 시장에 총력을 쏟으면서도 한편으론 내심 에쿠스와 제네시스로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브랜드 이미지도 높이려는 욕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fai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