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출 확대 17조7000억원을 포함한 총 28조9000억원 규모의 슈퍼 추경안이 편성됐다. 작년 말 수정예산에서 늘어난 부분과 올해 감세 분까지 감안하면 경기부양을 위한 총재정규모는 38조9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에 이른다. 이는 국제통화기금이 제안한 2%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급격한 재정 팽창으로 국가채무는 60조원 늘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위급한 경제상황에 비춰볼 때 슈퍼추경 편성은 불가피해 보인다. 경기침체로 생계가 막막해진 저소득층을 돌보고 인턴과 공공근로 같은 임시직이라도 만들어 고용대란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경안을 찬찬히 보면 문제가 많다. 예컨대 미취업 대졸자의 학자금 대출 원리금 상환을 1년간 유예하고 학자금 대출 금리를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정부는 하늘의 만나(manna · 성서에 나오는 신비로운 양식)를 뿌리는 '자비로운 손'이 된다. 그러나 재정확대는 결코 경기부양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정부지출이 확대되면 그 돈을 '자기 주머니로 옮기려는' 이익추구행위가 일어나게 된다. 재정지출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부패심리가 부추겨진다.

정부의 경기부양은 전방위적이다. 은행자본확충펀드 20조원을 조성한 데 이어 금융안정기금을 추가적으로 조성해 금융기관의 자본을 확충하겠단다. 최대 40조원의 구조조정기금도 만들어 기업의 부실자산을 처리해 주겠단다. 모든 은행에 대해 중소기업대출 만기를 1년간 연장토록 했다. 이들은 꺼져가는 것을 살리는 조치다. 정부는 '살리고,살리고'를 외치고 있다. 구조조정 대신 모든 기업을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 없는 경기부양은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역사적 경험이 이를 웅변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도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맞은 경기침체를 저금리로 피하려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구조조정과 부실정리를 미루고 재정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분기부터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와 같은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 현재 기업의 구조조정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 법은 채권금융사를 구조조정의 주체로 본다. 채권사는 돈을 빌려줬으니 구조조정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정부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주도의 '일사불란'한 구조조정이 불가능한 만큼 이제는 '시장을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즉 M&A(기업인수합병)로 눈을 돌려야 한다.

M&A를 통한 구조조정은 주주가치 및 기업경쟁력 제고로 이어진다. '실적개선 후 기업매각'의 턴 어라운드에 대한 보상도 M&A를 통해 이뤄진다. 이러한 순기능에도 우리나라 M&A 실적은 매우 저조하다. 2007년 우리나라 경상GDP 대비 M&A 거래비중(5.4%)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대우조선해양의 사례에서 보듯이 강성노조는 M&A의 걸림돌이다. 외국자본에 대한 반(反)정서도 장애요인이다. 이들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국내 및 국내외' 기업 간 M&A 성공사례가 쌓여갈 때 원활한 구조조정이 가능해진다. 이로써 투자유치와 자본유입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M&A 활성화의 시금석으로 최근 매물로 나온 OB 맥주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폭넓은 정책 시야와 종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더 이상 개발연대식 추경을 통한 경기부양과 외환위기에서와 같은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 다양한 정책조합을 구사하되 '시장을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