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인 영국의 피치가 국내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자본건전성 심사) 결과를 공개하자 은행들은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라며 일제히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은행들은 피치의 보고서가 국내 은행들의 해외 차입 등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했다.

피치는 지난 1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내년 말까지 18개 국내 은행에서 대출자산 손실, 유가증권 투자손실, 환율상승 등에 따라 42조 원 규모의 자산감소가 발생하고, 국내 은행의 단순자기자본비율(TCE)이 작년 6월 말 6.4%에서 내년 말 4.0%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A은행 관계자는 13일 "보고서는 원·달러 환율을 2010년까지 1,500원대로 높게 가정해 외화자산을 과대 계상했다"며 "또 개별 은행의 포트폴리오와 연체율 등이 각기 다른데 관련 자료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률적으로 손실 등을 추정했다"고 지적했다.

B은행의 재무 담당자는 "TCE는 자기자본 가운데 핵심자본의 비율을 뜻하지만, 자산의 질이나 은행의 리스크 관리 능력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맹점이 있는 지표"라고 주장했다.

단순자기자본비율(TCE)은 우선주를 제외하고 보통주만을 자기자본으로 인정해 자본적정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나 기본자기자본(TIER 1) 등에 비해 보수적이다.

최근 미국 정부가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활용한 지표와 비슷한 개념이다.

C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이 최근 후순위채 발행 등으로 BIS 비율을 높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지적한 것은 어느 정도 공감한다"며 "하지만 명망 있는 신용평가 기관이 공인되지 않은 방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내부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D은행 인사는 "보고서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적인 신용평가기관이 작성하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만큼 국내 은행들의 신인도와 해외차입 등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정태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은행들이 1년간 벌어들이는 충당금 적립 전 이익이 최소 30조 원으로 2년간 42조 원의 부실채권이 발행해도 모두 메울 수 있다"며 "단순자기자본비율이 4%로 떨어진다고 보는 것은 무모한 가정"이라고 비판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이날 오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서울 파이낸셜포럼 조찬강연이 끝난뒤 기자들과 만나 "글로벌 금융시장의 여건이 전반적으로 안 좋은 상황에서 한국 은행들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만 발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가 내년 말까지 침체될 것으로 가정한다면 은행 건전성은 나빠지게 마련"이라며 "하지만 이는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은행들 역시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