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세탁기 시장에서 드럼 세탁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정답은 50% 미만이다. TV에 등장하는 광고들이 드럼 세탁기 일색인 탓에 많은 소비자들이 이른바 '통돌이'로 불리는 '전자동 세탁기'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전자동 세탁기 열풍은 최근 들어 한층 더 거세지고 있다.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가벼워지면서 값비싼 드럼세탁기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게 가전유통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전자동 세탁기 가격은 20만~70만원 수준으로 드럼세탁기보다 20만~30만원가량 저렴하다.

주요 가전 업체들이 전자동 세탁기 소비자들을 겨냥,기능이 업그레이드 된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것도 분위기가 바뀌게 된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드럼 vs 전자동

드럼 세탁기와 전자동 세탁기는 장점이 다르다. 드럼세탁기는 소음이 적고 물을 덜 쓴다. 옷감 손상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디자인도 드럼 세탁기 쪽이 훨씬 미려하다. 냉장고와 패키지로 개발된 제품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까지 붙어있다. 알레르기 방지,신발 건조 등 부가 기능이 다양한 것도 드럼 세탁기의 강점이다.

전자동 세탁기는 세탁 시간 측면에서 드럼 세탁기를 압도한다. 7~8㎏의 빨래를 처리하는 시간이 30~40분 내외로 드럼 세탁기의 절반 수준이다. 이불 빨래 등 덩치가 큰 빨래에도 전자동 세탁기가 한수 위다. 드럼 세탁기는 세탁조가 작거나 세탁조 입구가 좁아 이불이 다 들어가지 않을 때가 있지만 전자동 세탁기는 이런 문제점이 거의 없다. 이불 빨래의 세탁 효과도 전자동 세탁기가 드럼 세탁기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빨래가 잘되고 고장만 적으면 된다는 실속파들은 여전히 수수하고 저렴한 전자동 세탁기를 찾는다"며 "세탁기는 베란다나 다용도실에 놓고 사용하는 가전으로 디자인을 신경쓰는 소비자들이 극히 드물다는 것도 드럼 세탁기가 시장 장악에 애를 먹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업그레이된 전자동 세탁기

최근 출시된 전자동 세탁기는 기존 제품에 비해 기능이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 가전 업체들이 전자동 세탁기를 고집하는 고객들을 겨냥,다양한 신제품을 내놓은 결과다.

LG전자가 지난 하반기 출시한 터보드럼 세탁기 '디디'는 가족이 많은 가정을 노린 제품이다. 세탁 용량이 15kg로 늘어나 한번에 많은 양의 빨래를 할 수 있게 했다. 물의 특성,물의 온도,세제 농도를 감지해 최적의 세탁 및 헹굼 코스를 찾아 주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빨래판과 드럼을 별도로 돌리는 방법으로 옷감 손상을 줄이는 '옷감 케어 세탁',소음을 줄여 늦은 밤에도 빨래를 할 수 있게 한 '조용조용 코스' 등도 선택할 수 있다. 이 제품의 가격은 70만원대로 저렴한 드럼세탁기와 맞먹는다.

삼성전자의 히트상품은 지난해 9월 출시된 '은나노 워시' 전자동 세탁기다. 표준,이불,울,찌든 때,급속,통세척 등 드럼 세탁기만큼 다양한 코스를 지원하는 게 이 제품의 장점이다.

대우일렉은 드럼 세탁기에만 있던 '건조 기능'과 '운동화 세탁' 기능을 일반세탁기에 적용한 신제품 '바람 업'을 집중적으로 마케팅하고 있다. 세탁조가 회전하면서 발생되는 원심력으로 외부공기를 끌어들여 세탁물을 건조시키는 게 이 제품의 작동 원리다. 세탁이 끝난 후 30분~1시간가량 건조하면 바로 다림질이 가능할 정도로 수분을 제거할 수 있다.

◆세컨드 세탁기도 인기

아이들이 많아 빨래를 자주해야 하는 가정을 겨냥한 '세컨드 세탁기'도 잘 팔린다. 특히 빨래를 삶을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제품이 인기가 많다. 대표적인 히트상품으로 삼성전자의 3㎏ '아가사랑' 세탁기를 들 수 있다. 98℃로 빨래를 삶아주는 기능을 갖춘 이 제품은 2002년 처음 출시돼 지난해까지 12만대가량 팔려나갔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최근 들어 오히려 판매 대수가 더 늘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가정뿐 아니라 독신자들도 3㎏ 용량의 제품을 찾는다"며 "위생을 이유로 속옷을 별도로 세탁하는 젊은 층과 손빨래를 선호하는 노년층들이 새로운 고객층으로 가세했다"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