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시대가 열렸다. 국내외 주요 언론들은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이라며 134년 전 노예제를 폐지했던 링컨 대통령의 이미지를 그에게 투영시키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흑인이 아니며 노예의 후예도 아니다. 아버지는 케냐 출신의 미국 유학생이었으며 어머니는 백인이었다.

링컨처럼 빈곤 가정 출신도 아니다. 그의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은 인류학 박사였고 빈민운동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세계은행의 고위직을 맡았던 여성이었다.

또 미국의 경제위기를 빗대어 오바마를 20세기 초반 대공황에서 미국을 구출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인 측면만 보는 한계가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정치와 사회적 측면에서 오바마와 닮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을 찾자면 앤드루 잭슨을 꼽을 수 있다.

1829년부터 8년간 재임했던 그는 미국의 첫 서부출신 대통령이었으며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 이전의 대통령들은 상류 특권층 인사들이었으며 대부분 버지니아 출신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뉴잉글랜드 지역의 자본가 계급에 의해 독점됐던 정치 및 경제적 권력이 모든 지역,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보통 사람들의 시대(era of common man)'가 열리게 됐다. 노동자,농민의 지위도 크게 올라갔다.

잭슨은 또한 일반 민중들을 백악관에 초청한 첫 대통령이었다. 그의 첫 취임식에는 남루한 옷을 입은 보통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몰려왔다.

대통령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흙 묻은 장화를 그대로 신고 고급 의자 위에 올라가 점잖은 상류층 인사들을 경악케 했으며 값 비싼 장식과 그릇들이 깨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잭슨의 연설은 청중들의 소란 속에 묻힐 정도가 됐지만 서민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이미지는 한껏 고양됐다.

오바마가 노예를 선조로 가진 순수한 흑인은 아니지만 첫 유색인종 출신의 미국 대통령이며 그로 인해 다인종,다문화에 바탕을 둔 진정한 미국의 사회적 통합이 기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앤드루 잭슨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한 오바마가 지난 20일 "우리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워싱턴DC로 몰려든 200여만명의 대군중 앞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인종,성별,세대를 초월한 지지자들 앞에서 행해진 그의 취임사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취임사 패턴을 그대로 빼닮은 것이다.

그 패턴이란 첫째 선거 기간 동안 분열된 국민의 마음을 한데 묶고 반대파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껴안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이라는 국가 공동체를 지탱해온 가치를 찬양하는 것이며 셋째는 새 행정부를 움직일 정치적 원칙을 천명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며 역사적 행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오바마의 높은 지지도가 취임사의 레토릭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있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해낼 것"이라는 평범한 수식어가 미국인들의 감동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은 그가 지향하는 변화의 목적지에 미국 국민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도 막강하다. 이런 점에서 힘을 앞세우기보다는 다른 나라의 이해와 협력을 통해 안보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오바마의 다짐을 존중한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질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주어지는 법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겠다며 잭슨이 만든 보통사람들의 시대가 사실은 노예,여성,인디언이 배제된 백인 남성들만의 것이었으며 정의롭고 관대한 정책을 약속한 인디언 부족들을 서부의 사막으로 강제 추방한 것도 잭슨이었다.

미국의 국민적 통합뿐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한 그의 약속이 꼭 지켜지길 원하는 것은 오바마가 잭슨보다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