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은 직원들 신바람나게 하는 것"

'신기(神氣)의 전도사.' 웅진그룹 임직원들은 윤석금 회장을 이렇게 부른다. 뭔지 모르지만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의미다. 윤 회장도 이 별명을 마다하지 않는 눈치다. 스스로도 "경영인으로서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은 직원들이 신바람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회장님을 만나거나 강연을 듣다보면 자신감이 생겨 어느새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고 간증(?)하는 직원들도 상당수다. 윤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옷차림에서도 잘 묻어난다. 환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젊은 사람들도 소화하기 힘든 노란색 넥타이를 즐겨 맨다. 옷장에 있는 넥타이의 80% 정도가 노란색 계열로 채워져 있을 정도다. 밝은 색을 좋아하는 만큼 '긍정' '희망'과 같은 말을 자주 강조한다. 신입사원 면접에서 얼굴에 그늘이 진 사람은 뽑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사결정 과정도 '쿨(cool)'하다. 임원들이 회의나 보고 때 어떤 사안을 올리면 그 자리에서 'Yes'와 'No'를 분명히 한다. 최정순 웅진 인재개발원 상무는 "모호하게 말을 돌리지 않으니까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편하다. 거절도 기분 나쁘지 않게 표현한다"고 전한다. 의사결정도 빠른 편이다. 지난해 초 선보인 웅진그룹 CI(기업 이미지 통합)는 통상 제작기간의 절반 정도인 6개월 만에 결정했다.

이런 윤 회장의 캐릭터는 흔히 '불도저' '카리스마' 등으로 표현되는 전통적인 기업인 상(像)과 거리가 있다. 그는 직원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넣고,비전을 제시하며,조직원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쪽이다.



1998년 외환위기로 웅진코웨이가 휘청거릴 무렵,사장이 그만두는 통에 윤 회장이 사장직을 겸임하게 됐다. 전 직원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그는 "구조조정 하러 내려온 게 아니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왔는데 힘을 모을 수 있겠느냐?"며 실직의 불안감에 떨고 있는 직원들에게 '신기'를 불어넣었다. 이 같은 경영 스타일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일즈맨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 윤 회장은 상대방에 대해 나쁜 생각을 갖고 있으면 일이 풀리지 않아 되도록 긍정적으로 사고하다 보니 제2의 천성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부드러운 성품이지만 원칙을 벗어날 때는 단호하다. 특히 회계,인사,구매 등의 투명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사소한 이권이라도 일가친척 등이 회사 일에 개입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지인들은 이런 그를 가리켜 국내 기업인 중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장 가까운 최고경영자(CEO)라고 평가한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은 "직원들을 자율적으로 이끌면서 투명성을 강조하는 태도는 글로벌 CEO다운 자질"이라고 말한다.

윤 회장을 글로벌 스탠더드형 CEO로 더욱 각인시키는 대목이 '환경 경영'이다. 계열사들이 친환경 원자재를 구입하는 데만 지난해 1605억원을 썼다. 그룹 소유의 경기도 여주 렉스필드골프장은 농약을 거의 쓰지 않아 환경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잡은 환경 · 태양광 사업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 기업다운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잡기(雜技)에 능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바둑은 아마 5단 실력.동급에서는 맞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당구(300점)와 마작,골프(핸디 12) 실력도 뛰어나다. 그렇다고 한 분야를 파고들면 끝을 보는 식의 '몰입형'은 아니다. 그저 즐기다 보니 내공이 쌓였다는 게 윤 회장의 설명이다.

주중에는 시간을 쪼개 쓸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에 시달리다가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쉰다. 임원들에게도 전화 한통 걸지 않는다. 윤 회장은 늘 "CEO는 결정권자이지 노동자가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한다. 밤낮없이 일하는 것보다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윤 회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일상을 세밀하게 살피는 관찰력을 통해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가 많다. 1980년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과외 금지령 소식을 듣고 실력있는 교사들을 모아 '헤임고교학습 테이프'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회사가 고비를 맞을 때도 창의적인 역발상이 큰 역할을 했다. 1986년 웅진출판 경영 시절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 뒤 우연히 신문을 읽다가 구독안내를 보고 힌트를 얻어 당시 학습지 업계에서는 전례가 없던 1년치 구독상품(웅진아이큐)을 만들어 150억원이라는 선수금을 확보했다. 밑천을 확보한 그는 잇따라 웅진식품,웅진코웨이 등을 설립하며 단숨에 주목받는 신흥 기업 CEO로 도약했다. 외환위기를 맞아 기로에 처한 웅진코웨이에는 업계 최초로 렌털 마케팅 시스템을 도입해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세일즈맨 윤석금은 웅진식품,웅진케미칼,웅진코웨이,웅진씽크빅,극동건설 등 16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37위의 중견그룹 총수로 발돋움했다. 올해 매출 목표가 5조2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그룹 외부에서는 2007년 660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한 극동건설을 불안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경제위기로 건설시장이 쑥대밭이 된 터라 위기감이 더욱 증폭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윤 회장이 올해 경영목표 1순위를 극동건설 정상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예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위기 때마다 드라마틱한 반전에 성공한 그가 올해 또 어떤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