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哲 < 성균관대 교수·스피치학 >

대선(大選)에서 후보를 뽑기 위한 국민 참여 경선(競選)은 중요한 민주적 제도이며 과정이다.

1848년부터 시작한 미국의 국민 참여 경선은 오랜 역사만큼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나 근대 미국의 경선 중 가장 무질서하고 폭력으로 얼룩진 경선은 1968년 민주당 경선으로 일명 '미시간의 전투'라고 불려진다.

1968년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면서 당시 부통령인 험프리와 존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뉴욕주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그리고 위스콘신주 상원의원인 유진 매카시가 경합하고 있었다.

대통령인 존슨은 월남전 지지자인 험프리를 후원하지만 케네디와 매카시는 베트남전 반대를 주창하며 첨예한 갈등을 겪게 됐다.

한편 민주당에 동조적인 반전(反戰) 학생운동 연맹은 험프리를 반대하며 전당대회 기간 동안 시카고 거리에서 데모를 벌이겠다고 천명하지만 험프리를 지지하는 시카고 시장은 데모를 불허했다.

일부 반전 운동 학생들은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가해 험프리 지지 연설이 나올 때마다 대회장 안에서 반전 운동가를 부르며 소동을 일으켰다.

전당대회 기간 동안 수만명의 학생들이 대회장 밖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로 600여명이 체포되고 경찰 100여명,학생 100여명이 부상을 입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당시 유권자들이 이 사태를 안방에서 생중계로 보았음은 물론이다.

미국 정치사가들은 훗날 거리에서 벌어진 폭력적 시위와 진압은 물론 아수라장이 된 민주당의 전당대회장 사태를 '미시간의 전투'라 이름붙였다.

아무튼 본선에서 험프리는 공화당 후보인 닉슨에게 0.7%인 50만표 차이로 낙선했다.

만약 민주당의 경선이 폭력으로 얼룩지지 않았다면,만약 '미시간의 전투'가 생중계되지 않았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라고 한다.

1968년 '미시간 전투' 이후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도 전당대회 당일 날 대선 후보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전당대회 수주 전에 후보를 확정하고 전당대회는 확정 후보를 중심으로 단결하는 출정식의 기능을 갖게 된다.

민주화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선거 과정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나라당의 경선 과열(過熱)은 도가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1~2개월 전만 해도 한나라당 경선의 시작은 '일하는 대통령' '747' '대운하 건설'과 '믿을 수 있는 대통령' '줄푸세' '열차 페리' 등과 같은 비전과 정책에 대한 토론으로 국민의 관심을 끌며 흥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각 후보 참모들이 주도하는 인신 공격성의 '과거 전력' 검증 공방은 급기야 검찰 고발과 수사로 이어지고,정책과 비전에 대한 메시지는 사라지고 인물에 대한 검증만 남았다.

제주 합동 유세(遊說)를 시작으로 경선을 다시 시작했지만 공식 합동 연설회 첫날부터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열성 지지자들이 벌인 몸싸움과 상대 후보 연설에 대한 야유는 전 국민들 앞에 생중계됐다.

급기야 지도부는 합동유세를 잠정 중단(26일 재개)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됐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우리 민주주의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사태가 이런 지경에 이르기까지에는 한나라당의 많은 구성원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먼저 한나라당 후보들은 국민들이 모든 과정을 소상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각 후보들은 도덕성 검증을 통한 정치 전략보다 국민들이 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구상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더욱 무거운 책임을 갖고 합동 연설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새로이 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물론 지도부는 국민 참여 경선에 대한 역사가 새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한나라당의 대표가 제주 연설에서 밝힌 '아름답고 성공적인 국보급 경선을 만들어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길이다.

한나라당 경선이 아름다운 경쟁이 되지 않는다면 민주 발전을 염원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줄 뿐이다.

본선의 승패를 떠나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참다운 경선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우리 정치가 해야 할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