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 금융회사들에 내부 직원에 의한 금융사고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업무상 알게 된 고객의 계좌번호나 비밀번호를 이용해 예금을 빼돌리는 등의 횡령.유용사고가 지난해 하루 평균 2건 가량 터진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들어 이같은 금융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금융회사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탓이다. 은행 합병과 구조조정 등을 겪으면서 일자리가 불안해지자 '기회가 왔을 때 한탕하자'는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회사들의 부실한 직원 관리·통제와 전산보안 시스템 미흡도 금융사고를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금융사고를 분석한 결과 내부직원에 의한 사고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인에 의한 금융사고는 2002년 47건(1천3백9억원)에서 2003년 64건(2백89억원),2004년 상반기 23건(51억원) 등으로 건수와 금액을 종합해보면 전체적으로 감소세다. 반면 내부직원에 의한 금융사고는 2002년 3백36건(2천2백15억원)에서 2003년 4백32건(1천3백50억원)으로 늘었고,2004년 상반기에만 2백71건(1천3백51억원)에 달했다. 작년 상반기 사고 건수가 전년 한 해 건수의 63%에 육박했고,사고금액은 전년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내부직원에 의한 사고 유형도 고객으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업무상 배임을 한 것 등은 줄고 있는 데 반해 고객 돈 횡령.유용은 급증 추세다. 고객 돈 횡령·유용의 경우 작년 상반기에만 2백3건,1천35억원에 달했다. 전년 한 해 동안의 3백20건,9백58억원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 정부 관계자는 "과거 금융사고는 은행 직원이 고객으로부터 돈을 받고 부당 대출을 해주는 것 등이 일반적이었다"며 "그러나 은행의 대출관행이 바뀌고 전산화가 급속히 진전된 이후엔 전산 조작에 의한 고객 돈 빼돌리기가 금융사고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도덕적 해이에 시스템'구멍' 금융회사 내부직원의 고객 돈 횡령이 횡행하고 있는 건 금융사 직원들의 윤리 상실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걸 보여준다. 이는 은행간 합병 등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고용이 불안해진 금융사 직원들이 '돈의 유혹'에 쉽게 노출된 탓이란 게 일반적 시각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큰 원인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의 전산보안 시스템이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객의 계좌번호나 비밀번호 등 핵심 정보를 내부직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전산시스템의 허점이 금융사고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은행들이 수백억원씩을 들여 경쟁적으로 차세대 전산시스템을 도입하면서도 업무 효율성 등만 중시할 뿐 고객정보 보안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다"며 "은행들의 부실한 보안의식이 금융사고 급증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부직원들에 대한 윤리 교육 등도 중요하지만 보안시스템 강화가 더욱 절실하다"며 "직원이 업무상 고객 정보에 접근하려면 관리자나 감독자 등 복수의 사람이 동의해야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시스템 보완 없이 직원들의 도덕성에만 호소해선 금융사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