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각각 22일과 23일로 예정돼 있던 원로자문단 회의와 회장단 회의를 돌연 연기했다. 회장단 회의는 당초 지난주로 잡혀있었다. 이미 한 차례 연기했던 회의를 날짜도 정하지 않은채 또 다시 늦춘 것이다. 전경련은 지금 월례 회장단 회의도 제대로 개최할 수 없을 만큼 고민에 빠져 있다. 회장단 회의를 열면 손길승 회장의 거취와 차기회장,전경련의 향후 진로 문제 등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쉽게 매듭지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데 전경련의 고민이 있다. 원로자문단 회의와 회장단 회의를 연기한 것도 이에 대한 재계 내부의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때문으로 보인다. 재계는 요즘 손 회장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주변에서는 손 회장의 사퇴를 강력히 만류하고 있지만 손 회장은 SK사태에 대한 수사 등으로 더 이상 조직에 누를 끼칠 수 없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안부재론'도 만만치 않지만 이번에는 손 회장을 붙잡기 어려울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재계 내부에서는 이미 차기 전경련 회장을 둘러싼 물밑 논의가 무성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뚜렷한 인물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 누구하나 차기회장을 맡겠다는 사람이 없기는 지난 2월 손 회장이 전경련을 맡을 때와 비슷하다. 전경련의 위상 약화로 내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차제에 명망이 있으면서도 확고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을 물색해야 한다는 공감대만 형성돼 있는 정도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손 회장의 퇴진이 불가피하다면 차기 전경련의 지도체제는 과도형이 아닌 실세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 정부,대 국민 관계를 고려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재계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이 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같은 생각이라면 회장단 중 최고령자를 차기 회장으로 선임하거나 현명관 부회장이 회장직을 대행하는 과도체제는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전경련 회장의 인선은 남덕우 신현확 이현재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김준성 이한빈 이승윤 나웅배 전 부총리,유창순 김각중 전경련 명예회장,송인상 고문,손병두 상임고문 등으로 구성된 원로자문단이 주요 그룹의 입장을 반영해 윤곽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원로들의 의견은 전경련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지도체제를 갖추자는 쪽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원로들이 적당한 인물을 물색해 '추대' 형식으로 밀어붙일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실세형 회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건희 삼성 회장,구본무 LG 회장,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등이 오래 전 고사 의사를 굳혔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전경련 일각에서는 대안으로 조석래 효성 회장,김승연 한화 회장,조양호 한진 회장,박삼구 금호 회장 등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 또한 본인의 고사 등의 이유로 역시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때문에 아예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지만 재계의 결집력을 높이고 개별 그룹과의 이해 관계를 조율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결국 차기 전경련 회장은 재계가 공동의 현안에 대처하기 위해 얼마나 강력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느냐,동시에 누가 재계의 실질적 수장을 맡을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