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제품을 출시하긴 했지만 하우리를 아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었다. 안철수연구소와 시만텍을 비롯한 기존 유명 업체들의 벽은 높았다. 기업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제품을 알려보려는 노력도 이 때문에 허사로 돌아가기가 일쑤였다. 하우리로서는 우선 시장에서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게 급선무였지만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기회는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99년 4월 27일. 소프트웨어지원센터내 하우리 사무실에 비상이 걸렸다. 13명의 전직원이 모두 동원돼 몇 시간째 걸려오는 고객들의 문의 전화를 붙잡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느라 목이 잠긴지가 오래됐다. 몇명은 PC를 들고와 몇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고객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느라,몇몇은 촬영나온 방송사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느라 모두 정신이 없었다. 바로 당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CIH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CIH 바이러스의 위력은 대단했다. PC내 파일과 하드디스크는 물론 플래시 메모리까지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무시무시한 기능을 갖고 있었다. 복구비용만 4백억원 이상의 피해를 냈을 정도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는 하우리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우리는 이미 사고 발생 1주일 전에 백신을 개발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타 업체들을 제치고 가장 빨리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권 사장은 사고발생 전부터 정부와 기업을 찾아다니며 CIH 바이러스의 위험을 경고했으나 신생 벤처업체의 경고를 귀담아 듣는 곳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사고가 터진 후 직원들은 밀려드는 업무로 인해 일주일을 고생하다 하나씩 돌아가며 몸살을 앓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오해도 받았다. 그때까지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생 백신업체가 고도의 기술로 치밀하게 제작된 CIH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치료한다는 사실이 영 믿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하우리가 바이러스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섞인 질문도 심심찮게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곧 대만에서 바이러스 제작자인 첸잉하오가 검거되면서 하우리는 억울한 누명을 씻을 수 있었다. 누명은 잠시였고 달콤한 성공의 쾌감은 컸다.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자 하우리를 잘 모르던 사람들도 "아,CIH 바이러스를 치료한 백신회사!"라며 알아보기 시작했다. 백신 소프트웨어 "바이로봇"을 구매하려는 발주서도 사무실 한켠의 팩스에서 줄지어 쏟아졌다. 설립년도에 1억원이던 매출은 이 해 20억원으로 뛰었다. "열심히 하면 언젠간 세상이 알아 줄 거라던 막연한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죠.자칫 흔들릴 뻔 했던 우리에게 CIH 바이러스는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 줬습니다." 권석철 사장은 지금도 CIH 바이러스를 하우리의 이름을 알려준 "은인"으로 기억한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