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1시 서울지검 정현태 3차장 검사실.통상적인 브리핑때보다 3배 이상 많은 60여명의 기자들이 10평 남짓한 방을 가득 채웠다. 85일을 끌었던 '병풍' 의혹에 대한 검찰의 공식 수사결과를 듣기 위해서였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유력 후보인 이회창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언론이 관심을 쏟는 건 당연한 일."발표 모습 촬영을 거부한다"는 검찰측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3차장실 밖에는 사진기자들이 장사진을 칠 정도였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렸던 만큼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에 온갖 '의혹'과 함께 '격려'의 시선이 몰렸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당운을 걸고 검찰 수사에 압력을 넣기도 했고 일부 언론은 각자가 선호하는 정당의 입장에 맞춰 검찰 수사를 해석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수사가 정치문제로 비화되면서 난감해진 건 검찰이었다. 검찰은 '엄정한 수사'를 천명했지만 수많은 뒷말만 남겼다.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특별수사반을 만들고 김대업씨가 제출한 테이프 목소리의 주인공을 분석하기 위해 첨단기법까지 동원했지만 "A검사는 OO당 사람"이란 정치권의 한 마디에 힘을 잃었다. 검찰수사가 정치권에 끌려다니는 모습은 이날 발표때도 그대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 자체에 하자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숱한 의혹의 중심에 있는 정연씨와 '병역면제 대책회의'에 참여했다는 한나라당 의원 등 핵심당사자를 소환조사하지 않은 탓에 "∼추정됨" "∼으로 보임"과 같은 '추측성' 수사결과를 냈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이들을 소환할 때 나올 온갖 추측성 보도와 (정치권 반응을) 생각하면 안부르는 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다"며 사실상 정치권 언론 등의 '외풍'이 부담스러웠다고 시인했다. 병풍 의혹은 겉보기엔 '김대업씨에 대한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검찰이 발표문 말미에 "다만 정연씨가 병역면제를 받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는 설명을 곁들인 건 민주당을 위한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엄정하게 수사했다'는 검찰의 설명에도 국민들은 "또다시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휘둘린 것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오상헌 사회부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