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북한 비밀지원설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배경은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대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오리무중인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계좌추적이 유일한 열쇠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석연찮은 산은 대출 대출과정이 적정했다는 산업은행의 해명과 달리 대출 당시 상황을 보면 석연찮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도 아니면서 현대상선에 대한 총여신액(2천600억원)의 2배에 가까운 4천900억원을 대출요청서를 받은지 이틀만에 선뜻 지원한 배경이아리송하다. 또 자금 지원 이후 산업은행이 자금 사용처에 대한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긴급지원의 타당성을 점검하지 않고 사후관리를 게을리했다는 점도 의혹을 키우고있다. 산업은행은 "통상적으로 워크아웃 기업이나 법정관리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금의용처를 확인하지만 당시 현대상선은 일시적 유동성위기에 빠진 정상기업이었으므로면밀한 용처 확인을 하지않았다"고 설명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이와함께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당좌대출을 받기 전에 당좌거래를 하고있던 금융기관은 외환은행을 비롯해 15군데 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분히 나머지 금융기관을 통해 900억원의 현금을 조달할 수 있었는데 굳이 4천억원을 대출해준 산업은행이 또다시 900억원을 빌려준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상선 대출금 용처 안밝혀져 현대상선은 대출받은 자금의 용처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시 현대상선은 4천억원의 당좌대출을 신청하면서 기업어음(CP) 상환 1천740억원 등 사용 계획서를 제출했지만 6월말 반기보고서엔 1천억원만을 대출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현대상선은 나머지 3천억원의 경우 하반기에 집행됐기 때문에 1천억원만을 기재한 것이라고 하지만, '급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출액의 4분의1만 쓴 점은 충분한설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대출액이 많으면 이자 비용이 늘기 때문에 우선 1천억원만 대출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고, "대부분 기업들이 보고서 작성시기에는 부채를 줄이기위해 대출을 줄여놓는게 관행"이라는 금융권의 주장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해명대로라면 이후 단기간에 나머지 3천억원을 끌어다 쓰지 않았다는 것인데 굳이 20여일만에 산업은행으로부터 또다시 900억원의 유동성 지원을 받을필요가 있었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부분은 현대상선이 회계장부 및 입출금 내역서를 공개하면 충분히 입증할 수있는데도 장부 공개를 꺼리고 있다. 게다가 당시 현대상선은 4천억원이라는 '거액'을 대출하면서 내부 이사회조차열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재정을 담당하는 실무진과 김충식 전 사장 등 고위급 임원 몇명만이 이 돈의 대출 과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오리무중인 대북 송금설 현대상선이 비밀리에 북한에 송금하려했다면 4천900억원이라는 자금을 일일이쪼개 회계분식을 거치거나 대금지급처와 사전약속을 통해 뭉칫돈을 별도로 모아야한다. 현재까지 회계장부상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는 것을 당시 외부감사인었던 공인회계사가 밝히고 있는만큼 이 경우에는 실제적인 자료 및 시설 확인이 필요하다. 금융계 관계자는 "분식의 방법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며 "비밀자금을조성하기로 작정했다면 연간 매출이 7조원에 달하는 현대상선 정도의 기업이 4천억원을 모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 주장대로 현대상선과 현대건설이 현대아산, 또는 국가정보원을 거쳐 홍콩, 싱가포르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나 가상계좌를 통해 북한으로 송금했다면 거래은행에 송금자료가 남게 된다. 아울러 대출자금이 북한으로까지 넘어가기 위해서는 거액의 달러를 환전해야하는데 당시 달러화 동향을 시퍼렇게 지켜보고 있는 외환시장의 감시망을 피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나온다. 그러나 외환시장 관계자는 "국내 외환시장 규모에서 4억달러라는 거액의 외화를일시에 바꾸었다면 환율이 크게 출렁거렸어야 하지만 당시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현대상선에서 현대아산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갔을 개연성은 높지만 그돈이 다시 북한으로 건네졌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연합뉴스) 정주호.한승호.이광철기자 joo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