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제약 김승호 회장(70)이 기업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최근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미 국민훈장 모란장(85년),프랑스정부 은장(86년) 등을 받았지만 "이번에 받은 훈장이 가장 값지다"고 김 회장은 강조했다. 기업경영에서 생산성보다 더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지난 99년 'NEO 21'을 선포,기업문화 혁신에 앞장서왔다. 'NEO'는'Newly(새롭게)''Early(빠르게)''Only(으뜸으로)'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 새로운 것이 아니면 만들지 말고 남보다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며 최고가 된다는 의미다. 그는 기술 관리 생산 기업문화등 4개 부문의 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NEO 21'을 통해 80억원의 수입대체효과를 거두었다. 지식경영정보(DIGEX)를 개통,판매계획 적중률을 65%에서 85%로 끌어올렸다. 이를 계기로 97년 이후 무분쟁 노사문화를 정착시키기도 했다. 김 회장은 지난 63년 '인류건강을 위한 기업'을 이념으로 창업한 후 39년동안 제약 외길을 걸어왔다. 보령이란 상호는 출생지 충남 보령에서 따온 것이다. 1957년 10월 종로5가에 처음으로 낸 가게도 '보령약국'이다. 그는 약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보령약국으로 종로5가를 약국거리로 만들었다. 그는 도산위기에 빠진 부산의 동영제약을 인수,1964년 1월 '오렌지 아스피린'을 생산했다. 약국에서 출발,마침내 제약업에까지 진출한 것이다. 보령이름으로 첫선을 보인 것은 일본과 손잡고 내놓은 생약제제 '용각산'. 6개월만에 주문이 몰려들면서 서울 성수동 공장이 풀가동에 들어갔다. 그는 '구심''통옥 기응환''겔포스' 등을 잇따라 히트시켰다. 김 회장은 지난 77년 하룻밤 사이에 4백20㎜가 쏟아진 집중호우로 안양공장이 수몰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의 신용을 바탕으로 거래선들이 현금거래로 도와줬다. 수해를 당한 바로 그해 보령은 전년대비 22.2%나 성장했다. 그는 '기회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보령을 '혼이 담긴 제약''작지만 아름다운 집단'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제약외길'이 그의 철학이다. 최승욱 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