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비전의 약칭인 휴비스(HUVIS). 작년 11월 SK케미칼과 삼양사가 50대 50대 비율로 합작해 출범시킨 화섬 통합법인이다. 휴비스는 출범 당시 3천5백억원이던 차입금을 현재 2천8백억원으로 줄였다. 6개월여만에 7백억원(20%)이나 빚을 갚을 수있었던 것은 두 회사의 통합으로 출혈경쟁이 사라져 폴리에스터 섬유를 제값을 받고 팔 수있었던데다 모회사의 출자전환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돼 현금창출 능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물류.연구개발.구매비 절감 등의 시너지 효과는 더빨리 나타났다. 연간 수백억원씩 적자를 내던 두 회사가 한 살림을 차린 뒤 작년 11,12월 두달 동안에만 경상이익 기준으로 14억원의 흑자를 냈다. 현대증권 임정훈 애널리스트는 "공급과잉에 따른 과당경쟁으로 수익성 침체에 빠져있는 나머지 화섬업체들도 이제는 경쟁업체인 휴비스와 경쟁하기 위해 통합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섬업계는 그러나 휴비스에 이은 제2의 통합법인을 탄생시키지 못하고 있다. 섬유 선진국 일본이 도레이와 데이진 등 2개 메이저로 시장재편을 끝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쟁국 대만도 파이스턴과 포모사그룹 등 2개 대형사 중심으로 재편을 시작했다. 화섬 수입국이던 거대시장 중국은 자급자족 능력을 갖추는 대로 3년안에 화섬수출국가로 돌변할 것이 확실시된다. 생산량의 80%를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화섬업계가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구조조정을 거부한 채 출혈경쟁을 계속했다가는 공멸의 늪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화섬협회에서 화섬업체 통합지주회사를 만들자는 얘기가 거론된다는데 말이나 되는 소리요" 조민호 휴비스 사장이 부실 화섬업체 4∼5개사를 하나의 지주회사로 묶자는 방안을 밝혔다는 내용이 얼마전 언론에 보도됐을 때 화섬협회에는 이해관계가 걸린 해당 회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워크아웃이나 화의 중인 임원들이 자리보전을 위해 통합을 반대하는 게 아닌가 의문시될 정도였다. 난처해진 화섬협회는 20년된 노후설비를 새 기계로 바꾸거나 화섬업계 공동으로 10% 이상 감산하자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일종의 '불황카르텔'인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전승인만 받으면 담합행위로 걸리지 않는다는 게 협회의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 해법은 위기를 모면하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10여개가 넘는 경쟁업체들이 일제히 감산이란 '신사협정'을 준수할지가 의문이다. 근본적인 원가경쟁력의 개선 없이는 글로벌 화섬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다고 교보증권 박종렬 애널리스트는 말했다. 정부와 채권단이 부실한 화섬업체를 연명시키는 워크아웃 등의 제도를 포기하고 살릴 업체를 선별,세제지원 확대와 공정거래법상 통합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했다. 한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화섬업계가 통합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느냐 아니면 부실을 이연시켜 동반추락하는가의 기로에 섰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