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건(84) 신한은행 회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16일 "이 회장이 고령인데다 지난 연말 일본에서 운영하던 신용조합 간사이흥은(관서흥은)의 파산 충격 등으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5월 신한 금융지주회사 출범 전까지 라응찬 부회장이 회장직을 대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희건 회장은 재일교포 사회의 대부인 동시에 국내 금융산업 발전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절이던 지난 17년 경북 경산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막연한 꿈을 안고 현해탄을 건넌 것은 15살때의 일이었다.

낮엔 단순 노무직으로 일하며 주경야독의 노력 끝에 23살에 명치대학 전문부를 졸업했다.

오사카 동남쪽에 있는 쓰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시작한 그는 곧 교포들 사이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아 상가 번영회 일을 도맡게 됐다.

지난 55년 일본 금융기관들로부터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던 교포 상공인들을 위해 오사카흥은(대판흥은) 설립을 주도했다.

이 일은 이 회장의 인생을 ''금융인''으로 돌려놓는 분수령이 됐다.

이사장에 취임한 그는 오사카흥은을 오사카 최대 신용조합으로 키워내며 교포사회를 금융이란 끈으로 묶어 나갔다.

오사카흥은은 간사이지방 5개 흥은과 합병해 간사이흥은으로 거듭났다.

이 회장은 재일동포들의 국내사업이 본격화된 77년엔 원활한 금융지원을 위해 국내에 제일투자금융을 설립했다.

이어 여세를 몰아 82년 7월 신한은행 탄생의 산파역을 맡으며 금융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그는 회장직을 20년 가까이 수행하면서 경영엔 일체 간섭하지 않은 채 정부로부터의 외압을 막아 신한은행이 우량은행으로 발돋음하는 초석을 닦았다.

하지만 지난해말 동포사회의 최대 신용조합인 간사이흥은이 파산선고를 받으면서 이 회장의 명성에도 흠집이 생겼고 신한은행 회장직 사의로 이어졌다.

한편 신한은행측은 이 회장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 대주주들의 지분매각이나 경영체제의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신한은행은 1천1백여명의 재일교포가 28%의 지분을 갖고 있고 이 회장의 지분율은 0.13%이다.

유병연 기자 yooby@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