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속시원히 설명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금융전문가"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 은행합병에 대한 정부와 업계의 태도를 이해할 길이 없다.

은행간 합병이 필요하다는 정부 고위관리들의 은근한 압력성 발언이 자주 시장을 불안하게 하더니 "우량 은행간 자율 합병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말은 그럴 듯한데 자율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고,또 "방식"이라는 용어에 눈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은행들로부터는 아무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니 그간 정부측의 분위기 조성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합병을 통한 대형화에 왜 그토록 집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합병에 따른 "규모경제성"에 대한 국내외 수많은 연구의 일관된 결론은 규모자체가 경쟁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규모증대가 해결책이기보다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꼭 학문적 결과가 아니더라도 큰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의문이 생긴다.

우선 우리나라 은행을 다 합쳐도 일본의 도시은행 하나 규모에도 못미친다.

큰 것으로 승부는 물건너갔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기본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합병은행들을 보면 상식적으로도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과 유럽 대개의 경우가 영업지역 및 전문분야의 보완에 목적을 두고 합병이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병 후의 성과가 실망스럽다는 보고가 늘어나고 있어 화학적 반응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의 큰 은행이 다 경쟁력이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세계 10대 은행중 3개나 차지하는 일본 은행들이 경쟁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구미 금융인들의 표현에 의하면 "덩치 큰 애기( Big Baby )"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작고도 경쟁력 있는 은행은 없는가.

무시무시한 경쟁환경에서 우리가 부러워할 정도의 영업실적을 내고 있는 홍콩과 유럽의 보통은행들은 우리 시중은행 규모의 4분의1도 안되는 경우가 흔하다.

누가 그 소규모 은행들을 경쟁력이 없다고 하겠는가.

"경쟁력"이란 "규모"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경쟁력은 특정분야에서 남들과 차별화된 전문성을 보유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며,전문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구미의 경우 노동시장이 유연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뚜렷한 목표와 필요에 의해 합병을 하더라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는데,합병의 목적도 뚜렷하지 않고 필요성조차 피부로 느끼지않고 있는 우리 은행들을 반강제적으로 합쳐놓았을 때의 장기적 결과는 예상하기 힘들지 않다.

조만간 문제봉합 방안으로 일부 선진국 은행처럼 다시 합병방안을 들고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

제1차 구조조정때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합병한 은행들에서 화학적 반응을 통한 시너지 효과보다는 조직융합에 따른 비용이 부각되고 있는 점은 우리식의 합병에 따른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국제금융시장도 인정하는 경쟁력있는 은행이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는 방법론상의 순서가 중요하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대형화에 앞서 개별은행이 군살을 빼고 전문성을 갖추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할 때다.

각자 군살없는 강인한 체력을 만들고 그 다음에 더 강력한 적과의 싸움에 이기기 위해 각자의 필요와 협상으로 합병을 고려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일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 없는 남녀를 예물로 유인해 억지 결혼시키면 행복한 결혼생활의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불철주야 금융경쟁력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그 수많은 인재들이 도출한 답이 합병이기 때문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마 부실은행 문제를 상대적으로 우량한 은행에 합병시켜 문제를 덮자든가,이번 정권내에 겉모습만이라도 그럴듯하게 만들려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든가,은행들은 합병때 기대되는 정부지원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넘기려 한다는 등의 항간의 소문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에 따른 문제점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모르는 분들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합병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다.

특히 "억지 합병"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됐다면 누군가가 속시원히 설명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누구 없소?

daeskim@ 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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