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cklee@kitech.re.kr >


친구의 얘기가 요즘 세태의 단면을 반영하는 듯하여 소개한다.

그에게는 여고 1학년생인 딸 아이가 하나 있는데, 하루는 새벽 4시에 귀가해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한다.

그의 딸은 친구들과 함께 엉덩이에 걸쳐 입는 힙합바지를 사러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와 밀리오레 등을 쏘다니다가 다음날 새벽에야 집에 들어온 것이다.

새벽 4시까지 의류도매를 하는 그 곳은 청소년 패션의 중심지가 됐다고
한다.

화가 난 아버지는 딸을 훈계하려 했으나 "아빠, 그러면 나 왕따 당해도
돼요"라는 딸의 외마디 소리에 할 말을 잃게 되더라는 것이다.

친구와 어울리든지, 아니면 혼자 남든지를 선택해야 할 때, 어느 누구든 왕
따돌림을 원치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로서 이를 모른 척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순수하고 개성있는
네 모습이 더 예쁘다"고 타일렀다고 한다.

우리가 한번쯤 깊이 생각을 해봐야 할 대목이다.

그 딸과 똑같이 우리 어른들도 "너도 하니 나도 한다"는 식으로 부화뇌동
하는 일이 많지 않았는가 반성을 하게 된다.

대기업의 경우 과거에는 자동차 반도체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에 중복과잉
투자를 했고, 이제는 기업구조조정이라고 해서 똑같은 식으로 정리해고 사업
매각 등 사업축소 일변도로 기업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청소년이든 기업이든 개성없는 무리근성(herd instinct)은 진정한 패션이나
구조조정이라 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힙합바지는 단정치가 못하고 꼭 사서 입어야 할 만큼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기업이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덩치만을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기술 개발투자를 늘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국경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고, 장차 지금의 경제난을 극복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시장에서 우리 상품이 진짜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를 수출하는
우리 기업의 구조조정에도 기술개발을 통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