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경제 위기로 세계 증시가 폭락하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미국 유수의 경제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는 웰스파고은행의
손성원 수석 부행장과 긴급 인터뷰를 갖고 브라질 위기가 한국 및 미국 등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심층 분석했다.

손 부행장은 브라질 레알화 절하를 틈타 국제 환 투기꾼들이 브라질 외환
시장을 전면 공략할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세계 전체가 또 한번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을 막기위해 국제적인 공조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손 부행장은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유력지에 자주 인용되는
등 미국의 주류 금융계에서 손꼽히는 국제 금융 전문가로 통하고 있다.

미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피츠버그대에서 국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뒤 73년 웰스파고의 전신인 노웨스트은행에 입행해 줄곧 국제금융
전문가로 줄곧 일해 왔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브라질이 외환 위기에 빠진 원인은 무엇인가.

"무리한 고정환율제가 화를 불렀다.

브라질 정부는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왜곡시켜 왔다.

최근 몇년간 레알화가 실제보다 고평가된 상태를 지속했는데도 고정 환율을
유지하느라 금리를 계속 높이는 등 자충수를 두었다.

살인적 고금리는 가뜩이나 과다한 부채에 노출돼 있던 기업과 지방 정부들
을 연쇄 도산의 덫으로 몰아 넣었다.

정부 역시 사회보장 제도등에 지나친 투자를 했고 적자를 누적시켰다.

결국은 국가 전체가 디폴트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브라질이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은.

"단언할 수 없다.

외환보유고는 어느 정도 확보돼 있다고 하지만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어
결과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위기가 단기간내에 쉽게 해소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브라질은 1년반 전 외환 위기를 맞았던 당시의 한국과는 달리 경제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저축률이 극히 낮은 데다 GDP(국내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원자재 생산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 금융기관들이 볼 때 경제의 펀더멘털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

국제 원자재 시세가 회복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 브라질에는 특히
악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4백1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결정했고 미국 정부도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이 브라질위기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은데.

"브라질 경제 상황은 IMF나 미국의 지원으로 쉽게 해결될 만큼 간단하지
않다.

미국과 IMF는 브라질에 긴축을 요구하고 있지만 브라질 정부가 얼마나
재정 긴축을 단행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연방 정부의 경제 장악 능력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단적인 예로 브라질 정부 예산의 90% 이상이 사회 보장및 연금 의료보장
등과 관련돼 있다.

이들 예산을 삭감하려면 헌법을 뜯어 고쳐야 하는데 가능할지 의문이다.

브라질 의회는 수많은 정당이 난립한 가운데 불안한 연정 체제로 돼 있고
중앙과 지방정부가 협력을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


-브라질 사태가 세계 경제에 제2의 외환대란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고
보는가.

"그럴 조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를 도탄에 빠뜨렸던 국제 환투기꾼들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브라질 외환 시장에 대해 전면 공격을 감행할 경우 그 여파는
중남미 지역은 물론 한국과 중국 홍콩까지를 포함한 세계 전역을 강타할
것이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분간 중남미 경제가 휘청거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원래 중남미는 브라질이 기침을 하면 폐렴에 걸리는 구조다.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이다.

최근 브라질에서는 1주일에 10억달러 꼴로 외국 자본이 빠져 나갔다.

하루에 10억달러를 넘어서는 속도로 발전해갈 가능성도 있다"


-브라질 사태가 한국의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은데.

"한국 경제에도 당장 발등의 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월가의 투자자들은 한국과 태국 브라질 등을 따로 보지 않고 이머징 마켓
이라는 한 덩어리로 분류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이머징 마켓의 어느 한 축이라도 무너지면 즉각 나머지 국가들도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월가에서 한국물의 벤치 마크로 간주되는 5년 및 10년 짜리 외평채 수익률
이 브라질이 평가절하를 단행한 지난 13일 하룻동안 0.5%와 0.7%씩 치솟은
것(가격 폭락)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이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개도국
전체의 신용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올들어 한국 증시가 거품 시비를 일으킬 정도로 수직 상승했다.

그럼에도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국을 올해의 가장 유망한 투자 대상국으로
지목했는데.

"한국 증시가 거품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주식시장이란 원래 과잉 반응하는 속성이 있는데 작년 외환 위기때 지나치게
떨어졌던 주가가 요즘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이 지난해 큰 폭의 무역흑자를 냈고 금리와 환율이 안정되는
등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게 사실이다.

한국 경제 자체만 놓고 본다면 증시는 추가 상승할 여지가 많다.

그러나 브라질 사태라는 복병이 출현한게 문제다.

브라질 위기가 중남미와 미국을 거쳐 아시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것인지 다각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의 제일은행 매각과 반도체 빅딜 등 구조 조정에 대한 미 금융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떤가.

"물론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된 한국의 구조 조정은 외형과 재무구조 등 하드웨어
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통해 금융 부담(financial variable)은 개선됐는지 몰라도 근본적인
구조(underlying structure)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예컨대 대형 시중은행의 상호 합병도 좋지만 이런 물리적 조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기관들이 자산부채 관리(asset liability management)나
여신 평가 등 내부 경영 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구조 개혁의 본령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서울은행 매각 등 굵직한 구조 조정 과제들이 남아 있다.

조언을 한다면.

"금융기관이나 기업을 매각할 때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이다.

당장 돈은 덜 받더라도 매각을 통해 그 기업에 피와 살이 될 선진 경영
노하우를 최대한 습득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굿 딜"이다.

특히 한국은 일부 제조 부문에서의 기술력을 빼고는 기술 인프라가 취약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기아자동차 입찰의 기준으로 매각 대금 등 외적
조건을 최우선시했는데 그 결과가 최선이었는지 의문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기업 매각을 통한 단기적인 자본 회수가 아니다.

긴 안목에서 경제를 키울 수 있는 소프트 파워를 수혈받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