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1백55마일 북방한계선은 늘 긴장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 긴장감을 뒤로하고 동해 바다를 가르며 금강호가 금강산을 향해 떠났을
때만 해도 나는 긴장했다.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의 참상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연 금강호가 돌아올 수 있을까하고 우려도 했다.

하지만 4박5일간의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돌아와 밝은 표정으로 그들이
배에서 내렸을때 안도의 숨을 쉬었다.

TV화면이었지만 실향민들이 금강산에 올라 아버지! 형니임! 하고 통곡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런 애절함 뒤에서 지켜보는 우리들은 개개인의 불행을 다 모르는구나
하고 절감하게도 된다.

자기앞에 놓인 불행이 아니라고해서 모르는 척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도
함께 얻게 되었다.

그리운 금강산은 그동안 분단에 의해서 우리에게는 신화나 전설속의 산처럼
생각되었다.

그곳의 뛰어난 아름다움은 주로 일제시대 씌어진 기행문을 통해 접할 수
밖에 없었다.

가곡이나 사진 등을 통해 간간히 그 경관을 접할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금강산에 대한 욕구만 부풀려온 셈이다.

그 금강산이 4박5일의 관광객들에 의해 실체있는 산으로 변한 것이다.

원한다면 바라보고 답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현실속의 산이 된 셈이다.

보라, 마치 우리산에 가듯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을 보고서 실감이 되고
가슴 설레이던 것을.

그러나 한편 신화를 마악 벗은 우리의 산이 되었구나하고 실감했지만
그 산이 언제 또 자연훼손이란 고치기 힘든 병을 앓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보도에 의하면 그것을 찾은 남한 사람들이 귤껍질이나 음식물같은
쓰레기를 흘려서 북의 안내원들에게 지청구를 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세계적인 명산이라 해도 이처럼 뭇 사람들에 의해 밟히고
훼손된다면 그 산도 머지않아 중증을 앓게 될 것이다.

금강산이 코 앞에 다가온 지금 환경보존 의미에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