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사.하이터치 공동기획-

이면우 <서울대 교수>


요즈음 전 국민이 뭉쳐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생각과 새로운 미래를 위한 다짐은 당연히
전 국민이 뭉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위기는 원래 뭉쳐서는 안될 일들이 뭉쳐 지내왔기 때문에
야기된 것도 많다.

지나치게 뭉쳤기 때문에 생긴 피해는 무엇인가.

중국의 대미 수출량은 이미 우리의 3배를 넘었고 우리와 경쟁하던 홍콩과
싱가포르는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었다.

대만은 외환보유고 1천억달러에 접근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것이 그동안 뭉쳐지냈던 결과이다.

한국의 기적을 본받으려던 나라들은 시급히 국가정책을 수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유명한 고목나무가 된 것이다.

뭉치는 것이 도가 지나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뭉친 곳은 죽었다.

미국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는 뭉쳐 지내다가 고목나무가 되었다.

자동차 산업 초기에 불붙었던 창의적 사고와 모험적 경영철학은 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병행하여 점차 퇴색되었다.

협력업체가 만들던 부품은 이익이 증가함에 따라 자동차 업체가 직접
만들게 되었고 창의적인 연구개발보다는 설비투자에 집중하였다.

양산효율에 집착하면서 신기술과 신소재의 적용을 기피하였다.

흩어져 있던 창의적 연구집단과 부품회사가 자동차회사로 뭉쳤던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점차 고목나무로 변하였고 경직된 고목나무 옆으로 일본과
유럽의 자동차 산업이 약진하였다.

이제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은 뭉쳐 지내던 것의 폐해를 뒤늦게 깨닫고
전세계로 흩어지고 있다.

1980년초만 하더라도 MIT대학 인근의 128번 도로(Route 128)는 첨단
벤처산업의 요람이었다.

중형컴퓨터 업체들이 이곳에서 잉태되어 속속 세계시장으로 확장을
계속하였다.

이들의 성장 배경에는 IBM등 대형 컴퓨터 연구소에서 흩어진 연구요원들의
활약이 컸었다.

당시 이곳에서 생산되었던 중형 컴퓨터는 전 세계시장을 풍미하였으나
이들도 중형 컴퓨터를 중심으로 너무 뭉쳐 지내다가 고목나무가 되었다.

성숙된 체계로부터 탈피하여 흩어진 것이 성공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중대형 전용 소프트웨어로부터 흩어져 개인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었다.

전세계 영화산업을 장악하고 있던 할리우드는 TV의 출현으로 수세에 몰리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할리우드에서 흩어진 영화인들은 자존심을 버리고 TV용 영화제작으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였다.

할리우드는 이제 새로운 영상산업으로 더욱더 흩어짐을 계속하고 있다.

세계 최대 기업임을 자랑하고 있는 제너럴모터스(GM)는 알프레드 슬로안
(Alfred Sloan)회장 시절에 세계 최초로 경영효율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세계 초일류기업의 자리를 굳혔던 것이다.

회사 규모와 경영철학에서 세계 최고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던 GM은
외부전문인력 활용을 등한히 하였고 내부의 조직과 기능을 뭉치는데
주력하였다.

이제 GM은 일본과 유럽 자동차의 추격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익성은 포드와
크라이슬러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GM도 드디어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GM은 아시아와 중남미에 설비배치와 공정순서가 똑같은 네 쌍둥이 공장을
동시에 건설하여 혁신적인 동시생산-동시관리 체제의 확립을 서두르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연이은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는 3M도 흩어지는 것을
상품기획의 주요 전략으로 삼고 있다.

3M사는 이익을 많이 내는 주력상품에만 의존하지 않고 4년이내에 개발된
제품으로 전체 매출액의 30%를 달성하도록 했다.

다른 회사들이 시장에서 성공한 한 제품에 매달려 뭉쳐 지내고 있을때
3M은 흩어져 매년 신제품을 만들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경영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히트 차종의 빈곤으로 고전하던 포드는 연구진의 자존심을 버리고 전세계로
흩어져 각국 소비자들로부터 호평받는 차종 1백개를 선정하였다.

포드 자동차의 전통적 개발 방법을 버리고 흩어져 있던 전세계 자동차
개발전략을 모은 것이다.

이 연구의 결과로 개발된 토러스(Taurus)라는 자동차는 단시간내에
포드사의 시장점유율을 11%나 향상시켰다.

포드사 연구진이 뭉쳐 개발할 때에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기록이다.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도 흩어졌기 때문에 오늘의 영화를 누릴수
있었다.

90년 실리콘 밸리는 거의 와해되었었다.

미국 정부의 국방비가 대폭 삭감되면서 4만명의 고급연구인력이 일시에
일자리를 잃게된 것이다.

이들은 국방비가 다시 증액될 때까지 뭉쳐 기다리지 않았고 각자 흩어져
살 길을 찾아나섰다.

그들이 흩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실리콘 밸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본의 아니게 흩어졌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낸 일들이 많이
있다.

조선조 때에는 끝없는 당쟁으로 수많은 선비가 귀양살이를 했다.

귀양가 먹고 살길이 막막했을 것이고 그곳 마을 사람들은 보기에 딱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양식을 건네주며 자식교육을 부탁하였다.

귀양지로 유명했던 곳은 예외없이 서당이 많이 섰으며 교육이 발달하였다.

귀양지 부근 주민들의 예술적 자질이 높은 경우도 많으며 농업 축산업
어업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

흑산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실학자 정약전은 김의 양식 방법을 개발하였고
그가 저술한 흑산도 어류의 회귀생태 연구는 오늘날의 과학기술로 보아도
대단한 수준이라고 들었다.

만일 조선조 때에 한양교도소를 크게 지어 모든 반대파를 한군데로 뭉쳐
수용했다면 깊은 산속과 외딴 섬에서 살던 주민들은 교육 문화 예술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초일류기업의 문화는 흩어지는 것을 강요하고 있다.

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인텔사의 기업문화도
흩어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텔의 연구소는 두군데로 나뉘어 있다.

한 연구소는 샌호제이에 있고 다른 연구소는 오리건주에 있다.

같은 회사 소속의 연구소이다보니 인사교류도 있고 정보교류도 있을 법한데
이 두 연구소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 연구소에서 신제품을 만들어내면 다른 연구소에서는 밤을 새면서 개발한
새로운 신제품으로 공격한다.

한 연구소에서 만든 신제품을 다른 연구소에서 재빨리 죽이는 것이 인텔의
경영전략이다.

생긴지도 오래되었고, 그동안 이익도 많이 내었기 때문에 이제 인텔도
고목나무가 될 때도 되었는데 계속 싹이 돋아나고 가지가 퍼져 나간다.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앤디 그로브 회장은 2년마다 사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불만을 자세히 적어
내도록 요구한다.

불만사항중에는 인텔의 기업풍토에 어긋나는 내용도 있고, 직급과
업무질서를 뒤엎는 무례한 요구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분방한 불만사항은 회사운영에 즉시 반영된다.

뭉치면 흩어지게 만들고 정상인이 될만 하면 또다시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심성으로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흩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소풍가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은 무엇인가.

선생님이 "해산"하라는 소리이다.

가장 싫은 순간은 무엇인가.

"집합"이다.

흩어지라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뛰고, 뭉치라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민족이다.

훈련소에서 생활할 때도 가장 즐거운 순간은 "해산"이었고 가장 답답한
기분이 들 때는 "집합"이었다.

우리는 흩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그동안 뭉칠 것만을 강요당해 왔던 우리는 어떻게 흩어져야 하는가.

대기업은 자존심 경쟁 대열에서 흩어져야 한다.

대기업의 계열사들도 흩어져야 산다.

계열사는 자사시장(Captive Market)으로부터 흩어져야 한다.

합심전력하자는 훈화의 행진도 이제 그만하고 흩어져야 한다.

사원들은 맹목적인 애사심 구호에서 흩어져야 한다.

품질과 성능과 가격을 무시한채 우리것이기 때문에 아껴야 한다는 국산품
애용 구호도 이제는 흩어져야 한다.

대기업의 본사 사옥도 흩어져야 한다.

특성과 분야가 다른 회사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을 한군데에 모아놓고 가장
오래된 규범과 전통적 가치만을 강요하는 곳 아닌가.

고목나무가 묘목들에게 고목나무의 생리를 가르치는 셈이다.

종합연구소도 흩어져야 한다.

다양한 사고가 요구되는 것에 관리효율만을 강조하는 연구관리 지침이
적용되지 않는가.

연구원들의 유니폼 행진도 이제는 흩어져야 한다.

유니폼은 획일적인 동류의식을 조성하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창의적
사고를 진작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문화이다.

기업의 중앙연수원도 흩어져야 한다.

계열의 특성이 살아날만 하면 모아놓고 획일적인 대표사상을 주입하는
곳 아닌가.

제너럴일렉트릭, 인텔과 모토로라는 사원들에게 끊임없이 흩어지는 방법을
가르쳐 세계 초일류가 되었다.

뭉칠 것만을 강조해 오던 우리 사회도 이제는 흩어지는 문화를 연구하여야
한다.

만일 우리 사회가 계속 뭉칠 것만을 강요한다면 우리의 어린 묘목들은 채
자라나기도 전에 고목나무가 되고 말 것이다.

이제 몇몇 국내기업들도 흩어지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기존체제로 새로운 국내외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궁금해진 것이다.

이의 한 방안으로 흩어지는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필자는 두 개의 항아리 제도(Two Pot System)를 우선 제안한다.

기존의 기업운영체제를 큰 항아리(Pot1)라 부르고, 이보다 훨씬 작은
새로운 항아리(Pot2)의 이원적 제도로 흩어지는 것이다.

큰 항아리에서는 기존인력과 현행 운영체제를 유지한다.

작은 항아리에서는 소수의 전문인력을 확보하여 조직의 유연성을
극대화하고 일상업무의 제약없이 큰 항아리 조직의 차세대 사업을 집중적으로
개척한다.

작은 항아리 조직은 소수의 연구팀을 운영하고 세계적 연구소와 협력체제를
구축하며 몇 개의 중소기업과 연계하여 시제품 개발및 소규모 생산체제를
구비하여야 한다.

작은 항아리 조직은 큰 항아리의 5~10% 규모로 시작하며 소수정예의 조직
구성원이 차세대 기술, 미래상품, 신규사업을 구상하고 이의 시범적 전개를
담당한다.

작은 항아리에서 성공가능성이 확인되면 큰 항아리 조직으로 이관하는
시스템이다.

이 두 항아리 제도는 한국적 경영여건과 우리의 기업풍토를 고려해 볼 때
가장 성공가능성이 높은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비유하자면 두 항아리 제도는 고목나무가 스스로 소생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고 고목나무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 기력이 남아있는
고목나무와 과실수확이 많은 묘목이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며 활력을 되찾는
한국적 경영철학이다.

회생하기 위한 노력을 거부하는 고목나무의 삭정이는 어떻게 치는가.

망설이고 안타까워하며 애처로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치는가.

그냥 치는 것이다.


[[ 한국형 이합집산 모델 ]]

<> Pot1
- 조직형태 : 기존조직
- 조직규모(%) : 90~95
- 경영이념 : 전략적 관리
- 담당기능 : Pot2에서 개발된 사업의 시장진출
- 운영특성 : 기존운영체제
- 비유 : 전투사단 지역점령

<> Pot2
- 조직형태 : 신규조직
- 조직규모(%) : 5~10
- 경영이념 : 창의적 모험
- 담당기능 : 신규사업 창출 국제협력 시제품 개발
- 운영특성 : 독자적 추진체제
- 비유 : 특공대 거점확보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