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때, 세밑의 따스함은 사라지고 사회 전체가 만신창
이가 된 느낌이어서 안타깝다.

나는 혼란과 어려움으로 고통을 느낄 때면, 중학교 때의 보잘 것 없는
자연실험이 생각난다.

증류수를 만든다고 비커 속의 물을 부글부글 끓이면 길다란 관을 지나
저쪽 끝에서 맑고 투명한 물이 한방울씩 떨어지는 것이었다.

고통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교사라고 했던가.

삶에서 고통없이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 끓어야만 수정같은 증류수가 얻어지듯이 모든 것은 반드시 그만큼의
대가를 치른 후에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살면서 수없이 체험하였다.

"일을 쉽게 하지 말고, 편한 것을 견제하자"

이것은 일천한 경험을 통해 얻은 내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쉽게 하는 방법들에 유혹도 받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 일을 하느냐"가 곧 "어떻게 사느냐"와 같은 과제
라고 생각하여 왔다.

일을 쉽게 하려는 것은 내 삶을 쉽게 던져버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여기며
나 자신의 마음을 다지곤 하였다.

"창조적 고통"을 쓴 폴 투르니에 의하면 고통은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한다.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고통 자체가 사회를 성장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없이는 사회가 성장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상처가 고통을 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치료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커다란 절망감 속에서 느끼고 있는 이 고통 또한,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천둥번개와 폭우 뒤에 더욱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듯이, 고통은 우리에게
기쁨을 알게 한다.

오늘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욱 성숙하게
될 나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붙잡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