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를 넘겨야 살아남는다"

사상최악의 연말자금대란을 버텨내기위해 기업들마다 초비상이 걸렸다.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위해 수출금융, 일반대출
가릴것없이 더욱 돈줄을 조이는데다 한국은행마저 통화긴축에 나서 기업자금
파이프를 옥죄고있다.

연말에는 물품대금결제 임금지급등으로 자금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도 사채시장 제2금융은 물론 은행창구까지 얼어붙어 연쇄부도
공포가 전업계를 엄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계은행들 마저 돈줄조이기에 가세, 기업들은 안팍에서
조여오는 자금경색으로 빈사사태에 빠져들고 있다.

대기업그룹 자금담당들은"IMF긴급지원으로 국가부도는 막았다지만
외국계은행들은 기업 단기외화채무에 대해선 상환압력 고삐를 더욱
조이고있다"고 발혔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들의 외화조달창구인 싱가포르와 홍콩등지의 현지법인은
부도직전의 위기상황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 그룹 자금담당은 "외국금융기관을 납득시킬수있는 자구계획서를
밤샘작업으로 만들고있다"면서 "개별기업차원에서 돈을 빌렸는데도 그룹
차원의 향후 경영계획을 요구하고있어 IMF요구에 상관없이 기업구조조정은
앞당겨질수밖에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안(일반대출)과밖(수출금융)양쪽에서
자금압박이 가중돼 상황이 더욱 긴박하다.

현대 삼성 대우등 종합상사들은 "네고담당직원, 책임자 가릴것없이 모든
은행을상대로 뛰어다니고 있지만 추심전 네고실적은 전무"라고 밝혔다.

H상사 자금담당은 "그동안 돌파구로 활용해온 외국계은행들마저 하나둘씩
네고중단을 선언하고 있고 수수료도국내은행수준으로 잇따라 올리고있어
안팍의 자금파이프가 하나도 정상가동 되지않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업자금담당들은 "오늘(26일)아침 BIS(기준 자기자본비율)문제가해결돼
대출숨통이 트인다는 일부 보도에 반색했지만 은행창구에선 전혀 반응이
없다"면서 "정책이 겉돈지 오래됐는데도 마치 실효가 있는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시중은행 여신담당들은 하나같이 "정부에서 은행후순위채권 4조원어치를
매입,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켜준 것처럼 얘기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외환 조흥등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은행들의 일선창구마저 "아직
본점에서 기업대출에 대한 어떤 완화지침도 없다"고 전했다.

연말에는 대출만기가 집중되기마련이어서 기업자금사정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K그룹 자금담당부장은 "그룹 전체로하루 1천억원씩 신탁및 일반대출만기가
돌아오는데 예년엔 자금성수기를 감안, 연장해주는것이 관행이었는데 올해는
어느 은행에도 통하지않는다"고 말했다.

G건설관계자는 "주거래은행 지점장이 개별기업의 입출금관리를 직접하는
사실상의 은행관리상태인 건설업체들이 한둘이 아닌 상황"이라고 전했다.

어음할인이 전혀안되다보니 기업들마다 받을어음을 배서해서 돌리는
방식으로 지급어음을 최소화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거래업체간에 다툼이
빈발하고 있다.

대기업자금담당들은 "자금경색이 얼마나 심했으면 주식가격이 이지경인데도
주식을 팔아서 현금을 조달하겠느냐"면서 "실제로 상당수 대기업 대주주들이
현금확보를 위해 지분을 줄이고있다"고 전했다.

J그룹측은 "연말 봉급도늦춰야되는 형편이지만 부도소문이 날까봐서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우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