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불볕 더위와 열대야 현상으로 무척 짜증나는
요즈음이다.

후덥지근한 공기 맛이며 끈적끈적한 피부감촉은 우리를 여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한 부문에서라도 시원한 소식이 들리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싶지만 어느 한 부문도 밝은 것보다는 암담한 소식들만 들려오고
있으니 짜증을 더해준다.

28일부터 시작된 대선후보들의 TV토론과 신한국당의 경선후유증을 보면
일종의 실망감마저 느낀다.

어떤 낙선자는 야당후보들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또 다른 낙선자는 당선된
후보를 도와주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하고, 독자 출마도 검토한다는 등
갖가지 행태들이 표출되고 있다.

이유도 여러가지이고 방법도 다양하지만 본질은 경선에 대한 불복이다.

당내 입지확보와 몸값 올리기라는 해석에는 할말이 없다.

이런 것이 정치기술인지는 직접 몸담아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알 길이
없다.

또 여당내 사정이라고 외면하고 싶지만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여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디 그뿐인가.

말로는 지역할거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도 꼴불견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본격화될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일들을 얼마나 겪어야
할지를 생각하니 암담하기까지 하다.

국회에 교섭단체가 구성돼있는 여야3당의 대통령후보가 확정됐다.

좋든 싫든 대권도전을 위한 본선이 시작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이들 정당후보 이외에 다른 정당이나 무소속 또는 소위 국민후보라는
이름의 대선후보들도 나올 것이라는 얘기들도 많다.

특히 야당후보 단일화가 논의되고 있어 앞으로의 변화를 점치기란 쉽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대선후보들의 TV토론이 많이 계획돼있다.

한국신문협회와 방송협회가 수차례에 걸쳐 공동 주최하는 것이다.

그 첫번째가 28일과 29일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와 김종필 자민련총재의
토론이 있었고 30일에는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하게 돼있다.

방송 3사가 공동으로 같은 시간대에 함께 방영을 하니 채널 선택의 여지도
없다.

TV토론이 많이 이뤄지게 된 것은 돈안드는 선거를 치르기 위한 정치개혁의
일환이기도 하다.

엄청난 비용을 필요로 하는 옥외 유세를 줄일 수 있고 특히 전국민을
동시에 대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영향력이 큰 만큼 잘못 운영됐을 경우의 부작용도 클 수밖에 없다.

후보자들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투영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신중한 운영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동안 있었던 토론은 그렇지를 못했다.

첫 시작인만큼 미국만은 못하더라도 좀더 체계적인 기획과 준비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토론의 질문과 답변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29일 "바른언론을 위한 시민연합"이 기자회견을 열고 토론의 객관성확보를
위해 별도의 "대통령선거 TV토론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구를 만들어
추진하자는 주장도 그래서 관심을 끈다.

우선 후보등록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토론이 이뤄지는 것이 적법한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이는 뒤늦게 참여할지도 모르는 여타 후보들에게는 상대적인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어느 후보나 등록만 하면 참여시킬 것인지, 아니면 어떤 기준을 정해
선별적으로 초청할 것인지 등에 대한 기준도 마련돼야 할듯 싶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공동토론의 기회가 많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뤄진 수차례의 토론이 모두 개별토론이었기 때문에 비교평가가
불가능했다.

개인관련 사항을 제외한 정책문제에서는 패널리스트들의 질문에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하고 잘 모르면 적당히 넘어가게 되는 폐단을 수없이 보아왔다.

공동토론이 이뤄지면 어느정도의 차별화가 가능하고 특히 상대가 있기
때문에 어물쩍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우열을 가려야 하는 게임이라면 보다 명백하게 가릴 수 있어야
할 것같다.

현재로서는 11월의 마지막 토론이 후보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토론으로
계획이 짜여져 있으나 기회를 좀더 확대할 여지는 없는지 검토해 볼 일이다.

좀 다른 얘기이기는 하지만 야당후보단일화를 꼭 이루겠다고 하면서 후보
초청토론회는 개별적으로 계속되는 것이 옳은 것인지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TV토론의 영향력이 큰 것은 이미 경험한바 있다.

신한국당 후보경선에서 이인제 후보가 2위로 결선에 진출한 것은 TV덕택
이었다는 점에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책임도 무겁고 운영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진짜 용들의 전쟁은 이제부터다.

과거와는 다른 깨끗한 승부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짜증나는 행태들이 하루빨리 정리돼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승패는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한다.

보다 공정하고 일찬 TV토론은 올바른 심판을 도와주리라 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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