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유통업계는 지금 충격에 휩싸여 있다.

김정태 회장의 투신자살로 이어진 대표적 토착백화점 태화쇼핑의 몰락이
결코 남의 일같지 않다고 현지 유통업계 인사들은 말한다.

서울의 대형백화점 몇개가 내려온 상황에서도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데
할인점까지 남진(남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우려다.

부산은 남진하고있는 거대유통자본과 지역유통자본이 벌이는 "유통전쟁"의
최대 격전지다.

태화쇼핑의 몰락은 바로 그 전쟁의 결과로 나타난 첫번째 상흔이다.

태화는 김회장의 투신자살 하루뒤인 10일 법원의 재산보전처분으로 일단
숨통은 텄으나 회생에 필요한 법정관리신정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법정관리신청이 수용될 것이라고 1백% 장담하기도 어렵다.

태화백화점은 지난 95년초까지만해도 부산지역 백화점 전체 매출액의 3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갔다.

평당 매출액도 전국 최고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롯데와 현대백화점이 부산에 진출한 95년 하반기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롯데와 현대는 순식간에 현지 백화점 시장의 절반가량을 장악했다.

토착백화점들이 그렇다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태화는 신관을 개설해 점포를 2배로 늘렸으며 세원도 매장을 2만평규모로
대형화했다.

미화당 부산 신세화등은 주변에 할인점을 거미줄처럼 설치하는 전략으로
맞섰다.

부산시와 부산상의가 조사단을 보내 일본의 대규모 점포 규제법을 연구하는
등 지역차원의 대응책도 마련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는 신통치않다.

대책이 오히려 어려움을 가중시킨 측면도 있다.

태화백화점의 경우가 그렇다.

태화백화점의 몰락은 무리한 점포확장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신관개설에 무려 1천여억원을 투입했으나 기대했던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부도에 이르게 됐다는 것.

태화의 신관개설은 위치나 설계등의 문제로 내부에서 조차 반대가 심했을
정도로 무리수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태화외에 세원과 부산도 올 상반기중 각각 8.8%와 3.9%의 매출감소를
기록했다.

지방 유통업계가 대형백화점이나 할인점의 남진에 맞서 살 수있는 길은
그러면 무엇인가.

규모의 대형화도 중요하지만 업체간 전략적제휴를 통한 지역밀착형
백화점으로의 전환과 전문화가 보다 시급하다고 유통전문가와 업계관계자들
은 강조한다.

세원백화점의 조봉신 부장은 "향토백화점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백화점내에 쇼핑시설뿐 아니라 레포츠 수영장 극장시설 등 전생활문화
공간을 갖춰 지역주민을 유치하는 것밖에 없다"며 "세원은 매장의 대형화와
함께 롯데 현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밀착형 영업전략을 펴고 있다"
고 말했다.

또 김해 울산지역에 4천~5천평 규모의 대형할인점을 세운다는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특히 신세화백화점과 농심가의 대응전략을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는다.

신세화는 대형백화점과의 직접대결을 피하고 부도심권으로 공략대상을
수정했다.

취급품목의 구조도 재편, 식품의 비중을 35%선으로 끌어올렸다.

신세화가 올상반기 큰폭의 매출신장을 보인 것도 이같은 전략에 기인한다는
평가다.

이 회사 나관현 차장은 "저가의 식품류 확보를 위해 신세화는 모기업인
세화수산을 통해 멸치 김 다시다 등 수산물을 서원에 제공하고 서원은 주류
일체를 공급하는 전략적 제휴도 맺었다"고 밝혔다.

농심가는 업태를 바꾼 케이스.

농심가는 유통전쟁의 조짐이 보이던 지난 95년 부산지역 슈퍼마켓을
25개에서 15개로 축소했다.

대신 "메가마켓"이라는 이름의 할인점을 개설했다.

메가마켓은 평당 매출액이 국내 할인점중 최고인 마크로와 맞먹을 정도로
현지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지난해 86억원의 이익을 내 1년만에 흑자로 돌아선데 이어 올해엔 1백억원
의 이익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임성구 이사는 말했다.

농심가는 이에 고무돼 언양에 2호점을 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선진기법으로 무장한 대형 유통자본과 영세한 지역자본의 유통전쟁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게 뻔하다.

따라서 지방유통업체가 살길은 기업 스스로의 특화나 협력도 중요하지만
지역단위의 종합적 대책도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부산대 황한식 교수는 "자본주의의 논리상 강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향토기업들이 살아남아 지역주민들을
위해 경제환경을 개선할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하는 것도 지방경제활성화
측면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 부산=김태현.안상욱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