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로 예정된 김영삼 대통령의 담화는 누가 뭐래도 시국 전반에 걸친
담화로서 특히 자신의 진로에 대한 방향제시가 중핵이 될 수 밖에 없다.

92대선자금의 진실을 얼만큼 담든 담화의 파장은 엄청 클 것이 분명한
마당에 이를 최소화하는 이상의 상위목표 설정을 그에게 기대하기란 힘든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높은 국민 지지, 내외 선망속에 취임한 김대통령의 7개월여
잔여 임기가 전적으로 달렸고 나라의 진로마저 큰 영향을 받을 이 담화의
향배를 예측하는 일은 불과 하루앞임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다만 상상할 수 있는 향배간의 폭이 의외로 크다는 점, 그 파장-파고가
엄청나리란 점만은 감지된다.

첫째 추정가능한 방향은 어쩌면 카리스마를 갖는 이 시대 마지막 대통령
으로서 범상인으론 생각할 수 없는 담대한 결단을 담은 담화이다.

그것은 일반은 물론 어떤 저의를 가진 적대 정치인이라도 이의를 달
여지가 없는 진실 그대로를 말한다.

하야를 포함한 자신의 향배까지 국민에 과감히 맡기는 것이 더욱 효과적
이다.

여기서 그런 수준의 내용이 나온다 한들 과연 그 진실여부 판단을 누가 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의 힘은 위대해서 이심전심 신뢰가 따르리라 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세는 극렬 반대측의 무책임한 파국적 선동을 압도,
결국 정국을 안정의 방향으로 돌리리라 믿어도 괜찮을 것이다.

둘째 가장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지난 2월의 한보사건과 차남에 관한
대국민 담화나 며칠전 "자료가 없어 못 밝힌다"는 간접발표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않은 내용을, 허언으로 포장한 모양새다.

이것이 어떤 반응을 불러 올 것인지는 불문가지로서 그 결과는 결코
만심할 일이 아니다.

셋째 그간의 타성으로 미루어 가장 개연성이 높은 절충형이다.

얼만큼은 진실에 접근한 모양을 취하되 내실에선 사실과 거리가 멀다.

여기서 작용하기 쉬운 것이 국민수준을 평가함에 있어 집권측의 잣대,
비판이 체질화된 야권의 잣대가 언제나처럼 평행선을 그을 가장 우려되는
현상이다.

카리스마란 무엇인가.

줄여서 보통사람으론 엄두를 내기 힘든 일종의 초인적 헌신적 자기희생과
인내심에 능력을 겸비한 지도자의 전유물이다.

다행히 김대통령은 오랜 민주화투쟁을 통한 카리스마로 해서 합당을 통한
집권, 그 후의 여러 시행착오도 정당화할 수 있었다.

하나 이젠 한계에 왔다.

지지를 아끼지 않던 많은 국민이 특히 한보-김현철 사태이후 김대통령
에게서 목마르게 고대해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바로 어느 정치인과도 구별되는 김대통령만의 결단이라 해도 무방하다.

다행히 야권에도 그 버금할 카리스마는 존재한다.

우리는 경제가 뒤틀리고 한반도 문제가 새 국면으로 이입하는 이 중대
시국에 평시엔 다시 나기 힘든 카리스마 정치가들이 마지막 구국의 자세로
합심해 주길 고대한다.

이는 자신을 위해서도 살 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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