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체제가 한창 붕괴되던 10여년전 소련 지식인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농담이 자주 오고갔다.

러시아 혁명 기념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은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로 열기가 오른다.

미사일 부대를 필두로 탱크부대,기계화 부대가 사열대를 지나가고
하늘에는 최신 공군기들이 에어쇼를 벌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사복을 입고 007가방을 손에 든 사복부대가 사열대
앞을 지나게 됐다.

단상에 서 있던 공산당 서기장이 바로 옆에 있던 KGB의장에게 물었다.

"저 부대는 자네 부대인가?"

KGB의장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들은 국가 계획 위원회 직원들입니다"

"아니 그 사람들이 왜 사열에 참여하는 거요?"

"서기장님, 저들은 소련같이 부유하고 막강한 나라도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이 일화는 국가계획체제가 소련같이 비옥한 토지에 풍부한 지하자원과
근면하고 머리 좋은 국민을 가진 나라마저 가장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자조적이며 냉소적으로 비웃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국가계획, 즉 정부간섭은 필연적으로 한 사회가 갖고 있는 모든 생산
요소의 자연적이고 경제적인 이동을 왜곡시킨다.

중앙소수가 가질 수 있는 지적 능력과 정보의 양은 온 국민이 가질
수 있는 능력 및 정보의 총계보다 항상 적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앙집권과 국가계획은 전 국민을 비자발적 노예 노동자로
만들고, 전 사회를 강제 노동 수용소로 만들며, 국내의 모든 생산 요소를
가장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배치하여 종국에는 궁핍을 보편화시키며 문명을
원시적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밖에 없다.

북한도 중앙계획체제를 고집하고 사유재산제에 근거한 자유경쟁체제로
전환하지 않는 한 지도층과 관료들을 포함, 전국민이 아무리 근검절약
하더라도 점점 더 가난해 질 것이다.

결국 북한의 식량 위기는 홍수나 냉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계획
경제의 필연적 결과이다.

자급자족, 자력갱생, 자주자립을 주창하는 소위 주체사상은 분업과
거래를 부정한다.

나라 전체는 요세화되어 외부로부터 고립된 자급 자족적인 중세봉건
영지로 되었고, 대내적으로는 모든 사회 단위가 자급 자족적 윈시공동체로
분열, 해체되었다.

탱크를 만드는 군수공장 기술자는 자기공장의 자급자족을 위해서
농사일에, 괭이와 호미 제작에, 이발용 가위와 식사용 식기 생산에
몰두해야 하고 선반공은 노동자용 주택건설을 위해서 벽돌공으로, 미장이로
혹은 목수로 일해야 한다.

외과의사는 감자재배에, 가계설계 전문가는 막노동에 노력동원 되어야
한다.

한편 농민은 농민대로 대장장이로, 창고건설 기술자로, 식품가공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

결국 전문성과 분업, 교환, 거래는 부정되고 모든 사람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어느것도 잘하는게 없는"원시인이 되어야 한다.

현대문명 사회에서 이러한 자급자족 원칙은 결국 모든 수준의 문명을
원시인 수준으로 끌어 내리고 전국민의 노동생산성을 최저수준으로 끌어
내릴 수 밖에 없다.

한가지가 공짜이면 세상의 모든 것이 공짜라야 한다.

식량이 공짜로 배급되면, 비료도 공짜여야 하고 농민은 공짜비료로 생산한
농산물을 무상으로 공출하여야 한다.

수송도 무상이어야 하고 비료공장 노동자도 무임노동을 해야 한다.

농기계도 공짜라야 하고 농기계 생산용 철강도 공짜라야 한다.

공짜의 고리는 끝이 없고 한없이 연결되어 화폐경제는 물물경제로
퇴보해야 한다.

상대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지고 전 국민은 공짜만을
바라는 어린아이같은 수준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주인이 식량과 생필품을 공짜로 대주기 때문에 국민은 일용할 양식을
장만해야 하는 걱정이 없다.

국민은 자기의 노력을 다하여 일할 까닭을 갖지 못하고 벌을 피할
수 있을 만큼만 일하면 된다.

결국 즉 거래의 원리가 아닌 공짜의 원칙에 근거한 배급제는 전 국민을
굶겨 죽게 만든다.

북한이 구제될 수 있는 방법은 개인 생활, 투자와 생산 ,시장과 교환에
모든 형태의 국가간섭을 중지하는 길밖에 없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자유 그리고 사유재산을 폭력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만 수행해야 한다.

모든 판단을 국민 각자가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게 하여야
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 것을 가장 절약하고 자기 이익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이를 달성하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안다.

따라서 타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 사람의 일에 끼여들 권리를
가진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이 원칙은 우리의 경제위기를 타개하는 과정에는 물론 통일이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적 원리라면, 자본과
노동도 생산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집중되는 것이 자연적 사회 원리이다.

국가와 정부는 온갖 명분을 앞세워 이러한 자연적 원리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설계 없이 생겨나는 자연적 질서는 몇몇 소수가 고안한 인위적 질서보다
항상 우수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남북한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수준을 비슷하게 도달시키려는 모든
형태의 인위적 계획을 완전하고도 철저히 포기하는 것만이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적은 희생으로, 가장 빠른 속도와 가장 높은 효율로 통일을
달성시키는 길이며, 이 길만이 한민족의 번영과 남북한 전국민의 진정한
사회적 통일을 달성하는 유일하고도 무이한 대안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