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법정처리시한인 2일을 넘기게 돼
정기국회 막판 일정자체가 파행을 거듭할 가능성마저 보인다.

여야가 제도개선 협상에서 쟁점사항에 합의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야권이 제도개선 합의없이 예산안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은 기조6,000억원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이며 증가율은 올해의
14.8%보다 낮은 13.7%로 외형적으로는 긴축인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팽창예산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예산안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정부가 수행하는 사업을 하나씩 보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문제는 정부가 쓸수있는 재원이 한정되어 있고 또한 동원가능한 자원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사업을 우선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는 정부가 짜놓은 예산안을 진지하게 심의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국회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국회는 나라살림살이를 정하는 예산안을 놓고 국민의 부담을 공평하게
하면서 어떤 사업을 우선시킬것인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해마다 예산안 졸속심의는 되풀이 돼왔고 올해엔 법정시일안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는 사태를 빚고 말았다.

정기국회를 예산국회라고 하는 것은 예산처리의 중요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국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며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국회를 국민의
대표기관이라 할 수 있는지를 의심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예산안처리를 법정시한안에 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코 가법게 남길
일이 아니다.

중요한 예산안은 제대로 심이하지도 않고 시간을 허비하다가 막판에
열심히 심의하는척 하면서 졸속 처리하는 것에 오랜 관행이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졸속처리마저 못하고 만 것이다.

만일 다른 기관이 법과 규정을 어겼다면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에서
얼마나 호통을 쳤을까를 한번 상상해 보지 않을수 없다.

예산안처리를 다른 문제처리와 연계시키는 것은 옳은 일이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예상은 예산이다.

제도개선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왜 예산과
연계시켜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야권이 여권에 맞서행사할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예산안을 볼모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일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수 없다.

여야 모두는 예산안처리를 법정시일안에 못한데 대해 국민에게 무슨 말을
할것인가를 찾아보자.

정착 국회에서는 어려운 경제현실에 걸맞게 예산에 긴축의지가 반영돼
있는지, 정부기관의 예산낭비요인이 얼마나 있는지, 경직성경비를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국민의 부담이 얼마나 공평하게 이루어질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예산성의를 제대로 하는것이 국정감사에서 목청을 높이는 것보다 훨씬
유용하고 효률적인 행정부결제수단이며 국회의원의 책무다.

예산은 예산이지 그어떤 것과도 연계시켜 다루어질 수 있는것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