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어인 일로 이러시는지요?"

보옥이 곤장을 맞으면서 애원조로 한마디 하였다.

"정녕 몰라서 묻느냐? 저놈의 입에다가 재갈을 물려라"

보옥은 입을 벙굿했다가 그만 재갈까지 입에 물게 되고 말았다.

보옥은 아버지가 자초지종을 물으면 자기가 금천아를 심하게 건드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변명하려고 하였는데 그런 변명의 기회마저 가질 수
없는 것이 억울하기만 했다.

도대체 아버지가 누구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이렇게 혹독한 벌을
주는지 따져보고 싶었다.

"아앗, 아앗"

하인들이 곤장을 들어 내리칠 적마다 보옥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가정은 하인들이 보옥을 봐주려고 약하게 곤장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하인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는 그들에게서 곤장을
빼앗아 자기가 직접 치기 시작했다.

가정의 문객들이 말려보려 하였으나 가정의 분노를 가라 앉힐 방도가
없었다.

옆에서 하인들이 속으로 곤장 수를 세어보니 가정이 무려 마흔 대가
넘게 보옥을 내리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온힘을 다해 내리치는지라 저러다가 보옥 도련님이 죽겠다
싶어 하인 한 사람이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가 왕부인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왕부인이 가정의 서재 뜰로 달려나가 그 광경을 보고는 어찔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지려 하였다.

시녀가 부축해주는 바람에 간신히 몸을 가눈 왕부인은 남편 가정의
팔을 붙들고 애원하였다.

"이 아기가 아무리 잘못 했기로소니 이렇게 무더운 날 피투성이가
되도록 곤장을 치다니요.

이 소식을 어머님께서 들으시면 요즈음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아예
몸져 눕고 마실 거예요.

그러니 어머님을 봐서라도 제발 자중하시고 아이 치는 일을 그만
두세요"

그러나 가정은 막무가내로 왕부인을 밀치며 소리쳤다.

"이런 놈을 낳은 것부터가 어머님께 불효를 한 거란 말이야"

"이런 놈이라니요? 어머님께서는 얼마나 애지중지하시는 손자인데"

"모두들 이놈을 애지중지해주니까 아주 버릇이 없어져서 못된 짓만
골라 가면서 하고 돌아다니지"

가정이 또 곤장을 치켜들어 내리치려 하였다.

"이 애가 무슨 못된 짓을 했다고 그러세요?"

"금천아라는 시녀를 강간하려고 했다며?"

왕부인은 가기 찬 듯 가정을 멀건히 쳐다보기만 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