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가 태어나기전에는 스포츠자체가 제3자로 관람하거나 자신이
직접참여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만끽할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직업과 관전이란 획이 뚜렷해져 대리만족에만 치중하는
일종의 오락으로 자리잡았다.

한의사배구회라고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온전히 지탱할수없는 것이
너무 당연할런지 모른다.

예전의 전국대회 연속우승이란 영화도 뒤안길로 사라지고 현역에서 지도자
의 길을 걷고있는 몇몇 초창기 선배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의사라는 본연
의 직업에 전념하고있다.

한의사배구회가 창설된 것은 경희대 한의대의 전신인 동양한의대 백남욱
(6회)송용진(8회)차상현 이석산 이재영(이상9회)씨등이 재학중이던 56년
이었다.

그후 김창엽(10회)권혁문(11회)김문보 이택영(12회) 권재룡 석학수 이창호
박대식(이상 13회)등이 가세하면서 점차 배구회는 활기를 띠었다.

이어 14회로 송기산 송용주 송세영 차석규 남경원등이 입학하면서 전성기
를 맞는다.

특히 송기산 송세영 이창호씨등은 수년간 국가대표를 역임하면서 한의사
배구회의 명성을 한껏 높여놓았다.

그러다가 68년 동양한의대가 경희대로 합병되면서 한의사배구회는 사실상
간판을 내리게된다.

그러나 당시 활약하던 선배들중에는 배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못해 지도자
의 길을 택한 경우도 적지않다.

미도파감독인 이창호선배는 수년동안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으며 석학수
선배는 페루남자국가대표감독으로남미배구 발전을 이끌기도했다.

경산대 침구학교수인 차상학선배와 송기산선배는 스포츠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못하고 씨름협회주치의와 대한배구협회 의무이사로 활약하고
있기도하다.

나머지 회원들은 대부분 석박사과정을 거쳐 전문직업인으로 한의원을
개업하고 있다.

이중 권용주씨는 해외의료봉사단단장으로 한의학을 세계에 전파하고있으며
송용주씨는 강남구 구의원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고있다.

현재 한의사배구회는 선배들이 이룬 전성기를 추억으로 떠올리며 정기적인
친목모임을 유지하고있다.

특히 매년 국무총리배 전국9인제 배구대회에 출전, 옛영광의 재현을 꿈구고
있다.

1부출전은 상상도 못하고 2부와 3부에 출전하고있지만. 현재 한의사배구회
의 주축멤버는 필자(28회)를 포함 장병수(30회)권용주(34회)이웅석(35회)등
으로 한의사일못지않게 애정을 갖고 훈련에 임하고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