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부장의 지시에 따라 나는 60년의 국내경제활동을 총망라해 수치화하는
투입산출표를 만들기 위해 "산업연관분석과"를 신설하고 과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조사부장의 언질대로 내가 믿을수있는 직원을 뽑아서
과원을 23명으로 구성했다.

제1차5개년계획을 작성했던 국민소득과 직원중 나를 가장 충실히 보좌한
안상국 장현규(은행감사원부원장,수출입은행감사역임) 이강수(한은부총리
이사) 이상근(한미은행장역임) 이상호(경기은행장이사) 박해빈씨등과 박승
(건설부장관역임) 임동승(현 삼성경제연구소장) 최명걸(대우부회장역임)
이찬구(수출입은행 런던금융회사사장) 성준경(한미은행전무역임)씨등
조사부내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투임산출표 작성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과장으로 모든 작업을 분야별로 나눠 작업지시를 해야 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과원전원이 투입산출표가 어떻게 생긴것인지도 모르는 상태
였다. 마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관한 경제기획원의 공청회때 변형윤
서울대교수가 5개년계획의 마이크로 산업별 수치를 정확히 계산하려면
투입산출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각방에 알아본 결과
변교수가 서울대에서 투입산출에 관한 강의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변교수를 초빙해 과전원이 오전 2시간씩 약20일동안 체너리와
클라크의 "Ieterindustrial Relationship"이라는 책으로 강의를 들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이 뉴욕에서 출판된 연도는 59년으로 책이 시장에
나온것이 60년일텐데 변교수는 이미 이 책을 구해서 독학으로 공부하고
서울대에서 강의를 했던 것이다. 변교수의 학자로서의 정열에 감탄했다.

그리고 최고회의 박정희의장명의로 유창순총재에게 공문을 발송하도록
종용한 분이 바로 변교수였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변교수의 강의를 듣고 체너리의 책을 읽으면서 과원들과 토론한 결과
lnput(투입) Output(산출),즉 "IO표"는 어떻게 만들것인가에 대한
작업방향감각이 떠올랐고 "이제는 할수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일찍이 레온티에프가 미국경제를 모델로한 이론적 IO표를 세계최초로
1937년에 작성했었다. 그후 앨버트 허시만이 한 산업의 전방파급효과와
후방파급효과를 레온티에프의 IO이론을 인용,불균형경제성장이론으로
전개했다.

예컨대 포항제철의 생산활동으로 IO이론을 설명할수 있다. 포항제철은
광업의 철광석과 석탄을 투입해서 선철과 강철을 산출한다. 제철소에서
산출한 선철과 강철은 기계공업 조선업 자동차공업등 뿐만 아니라 그외
모든 업종의 원료로 투입되어 기계 선박 자동차등을 산출하게 된다. 또한
강철과 시멘트를 투입해서 주택과 빌딩,그리고 교량과 도로를 산출하기도
한다.

각산업에서의 원료별 투입량과 노동자본의 투입량을 알아야 IO표를 만들수
있다.

60년도의 한국경제활동을 총망라하는 투입산출표를 작성하려면 그 기본이
되는 공장별 기초통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통계가 있을리 없었다. 그래서
각 공장에 가서 원료별 구입비,노임과 자본비지출, 그리고 매출액등을
표본조사하는 도리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를위해 산업연관분석과 직원을 증가시키는 과정에서 한기춘박사(현한국
외대교수)가 미국에서 IO공부를 했다고 해서 작업에 참여시켰고 여자직원
까지 충원,정규직원이 약 40명으로 늘었다. 또 약 80여명의 임시및
아르바이트대학생을 기본조사 요원으로 고용하는등 업무는 방대한 작업으로
확대됐다. 과전체가 도떼기시장같은 북새통을 이루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투입산출표에는 비단 산업생산에서의 투입과 산출만이 들어간것이 아니라
수입과 수출,운송 보험 금융 창고 도매 소매는 물론 음식업 호텔 다방등
서비스업도 전부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