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의 삶은 모든 사람이 가기를 원하는 인생행로일 것이다. 나의
경우 나이에 따라서 동호동락의 생활이 달라져감을 느낀다.

20대후반에는 주로 이성들과의 청춘을 누리느라 동료와는 동락의 시간을
갖지 못하였다. 30대에는 결혼을 한후 테니스와 등산을 번갈아 가면서
하였고,40대에는 자그마한 사업소를 맡아 관리하게되어 타향살이로 주말은
거의 직원들과 또는 홀로 등산을 다니게 되었다. 50대에는 경제 사회적인
여건의 변화에 따라 모두가 그랬듯이 골프에 열을 올렸다. 요즈음은
20대후반부터 그래도 비교적 명맥을 이어서 즐겨왔던 등산으로 맛과 멋을
느끼고 있다. 30대에의 등산은 주로 상사와 동반하여 정상을 정복한 후
산사나 군용야전 텐트 주위에서 만든 찌개와 그때 구하기 힘들었던 양주를
들이키면서 호연지기를 부리는 산행이었다. 이 시절에는 가볍고 튼튼하고
편리한 장비가 거의없어 대부분 군용을 이용하게 되어 장기산행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요즈음의 것보다 10배정도는 무거운 A텐트 매트리스 식기 수통 양말
혁띠등을 둘러메고 전국의 산을 미친듯이 헤매고 다녔던 때를 회상하니
그때의 추억들이 마음을 한결 젊게해 준다.

70년 초여름 전남일보사가 주최한 무등산등반대회에 참가했던 우리 4개조
16명이 정상에서 있었던 장비검사에서 입상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또
71년4월 대구근교의 팔공산에서 있었던 전국 한전산악회 등반대회에서
우리팀이 특별제작한 천연색인 4,6,8인용 텐트의 찬란한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이시절에 그 무거운 장비중 가벼운 것만 골라지면서도 풍부한 유머로
분위기를 리드했던 김일두회원을 잊지못한다. 특히 그가 만든 찌개요리는
일품이었는데 지금까지도 그처럼 맛있는 찌개는 먹어 본적이 없다. 필자는
김일두회원이 서울 출장에서 구하여 선물한 바람막이 속 재킷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입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가 선물한지는 잊고 있을
것이다.

특히 강원도 속초시절의 끈끈했던 추억은 오래 기억된다. 설악의
중턱에서 붉은 단풍에 취하여 일행중 아무도 하산을 원치않았던
일,자고나면 회사내 테니스코트의 네트를 넘게 쌓인 눈을 전직원이
오전내내 치우던 일들,그리고 이때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이 헤어질때
기념패에 담아준 글을 지금도 가장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전략-설악깊은
계곡속 피빛단풍의 향연,허리높이의 눈덩이를 땀으로 녹이던 그단결,청봉을
가로지른 의지와 정구장 가득한 함성.) 산생활에서 잊지못할 인연은 강종수
최상득선배님,김동진 김광재 오대일 이길수 표희두 박연수 배승춘
안주열후배들과 이곳 강동지점의 이양준 산악회장을 잊을 수가 없다.
이회장은 37년생의 나이에도 매주 산에 오르며 요즈음은 서울 근교의 산을
샅샅이 안내해 주고 있다. 등산이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게 된데는 다른
모임과 달리 무욕 무심 무아의 경지에서,인내 희생 협동의 동고동락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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