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나자 재계관심은 정부의 정책기조향방에 집중,그 파장을
가늠하느라 부심하고있다.
올들어 정부가 "신산업정책"을 마련한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총선직후
그룹기업군을 압박하는 정책들이 발표될것이라는 우려가 그동안 재계에
깔려있었다.
그러나 총선결과가 드러나자 재계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6공화국이 마감되는 시점에서 여당이 예상외로 참패한 사실을 감안할때
"상호지급보증축소""은행차입금의 기업출자전환"등 정부의 기업규제강화를
골자로하는 신산업정책을 급작스럽게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강하다.
특히 청와대측의 대대기업그룹강경론이 수그러들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동시에 재계의 사정을 잘아는 당이 돌풍을 일으킨 사실은 다소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도움이 될것으로 보는 의견이 우세한
분위기다.
이는 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눌려온 현실에서 국민당이 립법과정에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 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정치자금 기부등으로 홍역을 치르지 않아도 될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일고있다.
그러나 총선결과로 재계가 겪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을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권력누수현상이 일어나면서 총액임금제 실시와 5%임금인상억제가 사실상
물건너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흘러나오고있다.
또 집권당이 오는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경제현안이 뒷전으로 밀려날 경우를 배제할수 없다는 의견도 상존한다.
이경우 자금흐름이 제조업체로 유입되지 않으면서 기업자금난이 심화되고
노사분규가 격화될 우려도 있다는 견해다.
집권당이 표를 의식,또다시 대기업그룹군을 속죄양으로 몰아붙일 가능성을
점치는 견해도 나온다.
한편 상공부의 한관계자는 총선결과와 관나련,"향후 산업정책수립과정에서
기업들의 입김이 강할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재계는 이번 총선에서의 국민당 돌풍으로 정치권과 재계의 관계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는 특히 선거기간중 현대그룹의 공공연한 국민당지원을 놓고
경제5단체장이 반대성명을 내는가하면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이 공개비난하고
나서는등 재계내부에서 빚어졌던 심각한 부협화음이 어떤 형태로
귀착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재계가 가장 걱정하는 대목은 현대그룹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국민당의
원내교두보 구축이 다른 대기업들에까지 "정치권과 줄대기"를 강요하는
결과를 빚게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민주당과 국민당이 세를 크게 넓힘에 따라 대기업그룹들의
대정치권관계설정이 한층 복잡하게 됐기때문이다.
재계일각에서는 대기업그룹들이 총수의 성향등에 따라 사분오열되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재계는 당분간 기업경영이 "경제나 경영 논리"못지않게
특정정치권과의 친소관계에 의한 "정치논리"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재계판도의 급격한 변화는 없을것으로 보인다. 국민당의
현대편들기와 다른 대기업들에 대한 견제가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이나
공당으로서의 운신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등 경제단체의 위상에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정주영
국민당대표가 전경련명예회장을 아직 맡고있고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있는
만큼 그동안 정부당국에 눌려야 했던 무기력을 떨쳐버릴수있는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이에따라 재계주도세력의 세대교체도 지연될 것이라고 전경련 관계자는
전망하고 있다. 전경련의 무능에 반발,2세회장들을 중심으로 재계의
세대교체가 주창돼왔고 이번 총선에서 국민당이 참패하는 경우 정부의
소유.경영분리정책에 의해 원로들의 퇴진이 가속화될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정대표의 재계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커질것이 확실해지면서
원로들의 입김도 함께 커지게 될것이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총선과 맞물려 수면하에서만 진행돼온 재계의 굵직한 프로젝트및
현안들이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집권당의 약화를 틈탄 재계의 한건주의식 사업추진경쟁으로
인해 판도에 변화를 몰고올 가능성이 있는 현안들도 잇따라 터져나올것으로
분석하고있다.
재계의 이같은 움직임으로인해 업종전문화를 주축으로해온 6공경제정책의
틀이 크게 흔들릴지도 모른다는게 이들의 우려.
4월로 넘겨진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문제는 재계 최대의 관심거리.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특수관계로 구설수에 올랐던 선경은 국민당의
부상으로 사업추진에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
그러나 선경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사업권을 획득할수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추진하고 있는 상용차사업참여도 재계의 대표적인 현안중
하나. 삼성은 국민당의 부상이 몰고온 정국의 흐름을 관망,총선직후에
기술도입신고서를 제출하려고했던 당초방침에서 일단 후퇴하는 모습.
삼성은 당국이 상용차참여에 제동을 걸었던 점을 감안,차라리 경쟁논리를
잘 이해할수 있는 국민당이 본격 활동에 들어간 이후에 기술도입신고서를
제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있다.
4월중에 조선소를 결정키로 돼있는 LNG3,4호선의 선형결정도 관심의 대상.
국민당의 부상으로 현대가 이번 수주경쟁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없어졌다는게 재계의 시각이다. 국민당이 참패할경우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1척씩 수주할것이라는 소문이 그동안 나돌았다.
한국중공업으로 돼있는 발전설비일원화체제의 유지여부도 재계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의 하나. 산업정책심의회는 4월중에
영월무연탄(2백MW급)발전소와 평택복합화학(4백50MW급)발전소용 보일러
스팀터빈과 태안화력발전소의 보조설비공급체계를 결론낼 예정.
극동정유의 1천1백60억원증자에 차질을 빚게한 대주주 현대그룹의
지분매각규제에 대한 예외인정여부도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매듭지어질
전망.
극동측은 국민당의 선전으로 그동안 증자에 걸림돌이 돼온 현대그룹측의
지분매각규제조치에 예외가 인정될것으로 기대하는 눈치.
반도체분야에서도 설비투자자금마련과 관련,상업차관허용여부가 또다시
거론될것으로 전망. 한 관계자는 관련업체간 외화대부규모를 둘러싼
신경전도 본격화할것으로 예상하고있다.
국민당의 급부상에 대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것은 역시 대우와
선경그룹.
대우측은 "국민당이 어떤식으로든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것은 예상했지만
30석이 넘을줄은 몰랐다"며 "그렇다고 대우가 특별히 더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것"이라고 애써 태연해했다.
재계일부에서는 "대우가 막판에 정보분석을 잘못해 무리수를 뒀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나 정작 대우측은 "이번기회에 대우가 현대의 라이벌로
부각돼 오히려 불이익을 덜받는 효과도 있다"며 다른 측면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선경그룹은 타그룹등에서 "이번 선거결과로 선경의 이동통신사업이
물건너가게 됐다"는 반응이 나오자 "우리와 국민당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삼성그룹은 25일 오전 비서실 경영관리팀이 긴급회의를 갖고 국민당의
부상이 재계전반및 삼성에 미칠 영향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는 "현대그룹=국민당"으로 보는 정부의 시각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것으로 분석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당의 뿌리가 "현대"라는 기업인 만큼 "기업당"으로서
산업정책수립과정에 경제계의 입장을 많이 반영시킬 것이라는 판단이
주조를 이뤘다는것. 결국 정부의 대대기업통제를 약화시키고
정경유착시비가 이는 수의계약등을 줄일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으로서는
유화부문을 제외하고 현대와 부딪치는 업종이 별로 없다는 점도 낙관적인
전망을 하게 만든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국민당의 "성공"에 대체로 만족스러워 하며 안도하는
모습이다.
현대관계자들은 이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기업과 정치가 각자
가야할 길을 가야되지 않겠느냐며 그동안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기를 바라는 표정이다.
한 관계자는 앞으로 현대도 국민당과의 연결고리를 끊어 국민들의 의혹과
비난이 없도록 기업활동에만 전념하고 정부도 현대를 국민당과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게되기를 바란다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관계자는 정주영대표가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이번 총선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이상 정경유착의 의혹을 사지않고 홀로서기 위해서도 현대와의
고리를 끊을 것으로 전망했다.
재계일각에서 정부가 총선후 재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현대에 대한
압력의 강도를 높일것이란 시각도 있으나 탄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불필요한 마찰은 일으키지 않을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