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 고인의 덕목 떠올리며 애도
영화와 비운으로 점철된 과거를 딛고 평범한 일상을 새겨온 전 퍼스트
레이디 프란체스카 여사가 92세를 일기로 19일 세상을 떠났다.
독립운동가의 아내 대통령 부인<>망명 국가원수 부인<>초대 대통령
미망인 등 으로 이어진 한국인과의 생활 58년에 어느덧 외모조차 한국
할머니처럼 변모했다는 평을 들은 그가 운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고인의 덕목을 떠올리며 한결 같이 애석해 했다.
특히 시민들은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 독립운동을 해온 선열들의
뜻을 받들어 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의 통일 준비에 힘써야 한다. 내가
독립운동가의 아내로서 평 소 살아온 방식대로 장례를 검소하게 치뤄달라.
관에 이승만대통령이 쓴 "남북통일 "이라는 친필 휘호를 덮고 태극기와
성경책을 넣어 달라" 는 유언을 남겼다는 얘기 를 듣고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한국적'' 으로 마감을 한 고인의 깊고 높은 뜻을 숙 연함 속에
받아 들였다.
음식도 콩나물과 무나물,시루떡,현미 떡국 등을 좋아했고 " 한국에
시집을 와 세계 제일의 건강식인 한국 음식을 먹고 지내다 보니 장수를
하는 것 같다" 고 말했 던 여사도 90대 나이는 어쩔 수 없었던 듯 지난
1월30일 새벽 방에서 밖으로 나오다 넘어진 후 거동을 제대로 못하다가
지난 17일 오후부터 혼수상태에 빠진 후 타계했다.
지난 1900년 6월1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사업가의 막내딸로 출생,
1934년 당시 58세의 이박사와 결혼한 여사는 원래 건강이 좋은 편이어서
매일 새벽 4시30분쯤이 면 일어나 성경을 읽거나 종교음악을 감상한 뒤
이화장을 방문하는 관람객들과 담소 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는 등의
재미로 소일을 했으며 평소 "남북 통일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죽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며느리 조혜자씨(50) 는 말했다.
외부인들에겐 여사로, 가족 친지들에겐 할머니로 불리었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생전에 양장 대신 쪽지어 빗은 머리에 한복 치마 저고리 차림으로
항상 온화한 표정 과 단아한 여성의 품위를 잃지 않아 전혀 이국적인
풍모가 엿보이지 않는다는 얘기 를 많이 들어왔다.
빈에 있던 두 언니도 오래전 작고했고 그의 고향엔 두 조카딸이 남아
있긴 하지 만 서로 대면을 하지 못해 사실상 친정과 인연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었던 여사는 남 편의 유품과 숨결이 어린 이화장에서 양자 이인수
박사 내외와 두 손자 병구(24), 병조씨(22)로 부터 한국식 존경과 봉양을
받는 노후 생활을 더할 나위없이 흡족해 했었다.
가장 아끼던 물건은 이박사가 신혼 초에 선물로 준 부채와 `화락'',
`공곡유향'' 이란 글이 씌어진 이박사의 친필 액자.
기회있을 때마다 " 이박사는 지금도 `가슴속의 반려자''로 살아있다"고
말했던 여사는 지난 70년이래 이화장에서 거주해 오면서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 한 일주일에 한번씩은 반드시 동작동 국립묘지안 공작봉에
있는 이박사의 묘소를 참배 해왔다.
여사의 생활은 정부연금 2백50만원 (전직 대통령의 영부인에 대한
예우기준)과 정부가 사회활동비로 지급하는 1백만원등 월 3백50만원으로
꾸려왔는데 생활비중 상당부분을 저축, 양로원및 재소자 선교단체의
후원금으로 사용해 왔다.
승용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선물한 `신진 크라운''을 12년 동안
사용하다 자주 고장이 나 유지비가 많이 드는 것을 알게된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그랜저''한대를 선물, 이를 이용했다.
대한민국 첫 내각을 구성하는 의논처이기도 했던 이화장 본관에는
프란체스카 여사가 경무대 시절 손수 꿰매 입었던 양말과 속옷등이 진열돼
있는데 여사의 검소 한 생활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
며느리 조씨는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밴 어머니로 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며 " 어머니가 제일 싫어 하시는 것중의 하나가 과소비였다" 고
말했다.
조씨는 또 " 어머니가 `아내로서 가장 행복했을때는 남편이 대통령이
된 후 첫 월급을 가져다 주었을 때였다''고 말씀하셨다" 면서 " 당시
아버님이 붓글씨로 `안빈 낙업''(자기 분수에 맞는 검소한 생활을 즐기고
일하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는 뜻) 이란 글을 써주셨는데 지금도
집안에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