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기적합업종 법제화, 통상분쟁만 부른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대기업 진출을 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를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선정이 민간의 자율적 합의에 따라 결정되고, 대기업의 사업이양이 권고적 효력만 가질 뿐 실효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자리하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는 과거 실패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의 부활에 불과하다. 고유업종 제도는 정부가 중소기업 관련법으로 고유업종을 지정하는 등 법제화해 시행한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제도였다. 1979년 도입했다가 2006년 폐지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는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로 부활했고, 고유업종 제도 시행 당시 제조업에 국한됐던 대상 산업은 적합업종으로 부활하면서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으로까지 확대됐다.

과거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는 법제화에도 불구하고 보호된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생산효율성을 달성하지 못하는 제도적인 한계와 문제점을 노출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중소기업 고유업종에서 해제된 뒤 부가가치 노동생산성은 3.2% 상승하고, 노동투입은 약 9.4%, 자본투입은 약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가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제약하고 성장성을 억제했다는 증거다.

더군다나 최근 인도는 소기업 보호정책을 폐지하고 있다. 소기업 보호품목에 대한 대기업의 진입금지 및 사업확장 불허를 규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적합업종 제도와 비슷하다. 인도는 1967년 이후 거의 50년간 고용창출과 소득 재분배를 위해 소기업 보호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소기업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정책 목표와는 달리 그 경제효과가 미미하고 제조업 투자를 축소시키는 등 역효과가 발생해 폐지수순을 밟고 있다. 인도의 소기업 보호정책의 해제는 산출·고용·투자 확대와 함께 생산성의 빠른 향상을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정책은 소비자후생 감소, 중견·중소기업 성장 억제 및 적합업종 기업의 성과 악화 등을 발생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더구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특정 업종에 대한 경쟁 제한, 특정 경제주체에 대한 사전적인 진입규제, 특정 사업자에 대한 보호주의 특성을 그대로 포함하는 제도로 자원배분의 왜곡, 생산성 향상 억제, 기업규모 분포의 왜곡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구나 정부가 적합업종을 지정하는 등 제도의 법제화는 국제통상 규범을 위반할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현행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상 적합업종 근거조항이 포함되면서 그 자체로서 정부조치로 평가될 위험성이 커졌다. 적합업종이 법제화돼 정부기관이 직접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사업조정까지 수행하게 되면 국제통상규범상 당국의 조치에 해당하는 것은 더욱 분명하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EU FTA에서는 개방유보 업종목록을 규정하고 있는데, 적합업종이 해당 목록에 없는 경우에는 시장접근 허용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적합업종제도로 외국인 투자자가 해당 사업에서 철수·중단하는 경우에 간접수용에 해당하며 정당한 보상이 없으면 부당한 직·간접수용 금지를 위반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인도가 소기업 보호제도를 폐지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한국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를 강화하는 등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최근 적합업종 법제화 안은 정부의 개입과 법적 강제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통상 규범을 더욱 명확하게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병기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lbk@keri.org >